[고두현의 책마을 편지] 청년 의사 장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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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에 간 설상절제(楔狀切除) 수술을 처음으로 해내고 1959년 국내 최초로 간 대량 절제수술에 성공했으며 의료보험의 효시인 청십자 의료보합조합을 만든 사람,가난한 이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는 서원을 한 이후 죽을 때까지 낮은 곳에서 병든 사람과 함께한 사람….'한국의 슈바이처'로 불리는 장기려 박사(1911~1995)의 인생은 '성자의 삶'이었습니다.
그의 남다른 여정은 '의사를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는 기도에서 출발했습니다.
나머지 인생은 이 서원을 지키기 위한 순간순간의 집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평북 용천에서 태어난 그는 경성의전에 입학하기 전 가슴 깊이 새긴 이 맹세를 영혼의 청진기 삼아 '인술의 꽃'을 피워냈습니다.
작가 손홍규씨가 그의 청년 시절 이야기를 소설로 담아낸 <청년 의사 장기려>(다산책방)를 펴냈군요.
청년 시절에 초점을 맞춘 것은 "오늘날의 우리 삶을 결정지은 역사적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설명합니다.
어린 장기려에게 들려준 할머니의 얘기가 눈길을 끕니다.
"기려야,너는 옷을 여러 번 껴입는 사람이 되고 싶으냐,아니면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해주는 옷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으냐.이 할머니는 네가 다른 사람들의 옷이 되어줬으면 싶구나.
다른 사람들의 체온을 지켜주는,옷처럼 늘 사람들 곁에 머무는 그런 사람이 되어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구나."
그가 의사의 길을 걸으면서 겪는 시련과 깨달음의 과정도 아릿합니다.
그는 '의학이란 눈 내리는 길을 걷는 것과 비슷했다'고 말했습니다.
'한 걸음,두 걸음,매 걸음이 미답의 영역에 발자국을 남기는 개척의 역사를 이루지만 세 걸음,네 걸음 앞으로 나갈수록 첫 번째 발자국과 두 번째 발자국은 계속해서 내리는 눈에 의해 지워지고 말지 않던가.
그래서 의학은 늘 새롭고도 낯선 영역이다.'
폼 나는 외과 과장직을 거절했을 때 아내의 반응도 콧날을 시큰하게 합니다.
"당신이 결정하실 문제예요.
도립병원으로 가는 것도 좋겠지만,무엇보다 당신 마음속에 거리낌이 없어야 하니까요.
저는 이대로도 괜찮으니 가족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받은 감동은 작가의 후기까지 그대로 이어집니다.
'대개의 종교인들이 숭배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것들을 자신의 삶으로 만들어버린 이 사내를 기억한다는 건 어쩌면 하나의 고통이지만 기꺼이 감내할 가치가 있는 고통이기도 하다.'
문화부 차장 kdh@hankyung.com
그의 남다른 여정은 '의사를 한 번도 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는 기도에서 출발했습니다.
나머지 인생은 이 서원을 지키기 위한 순간순간의 집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평북 용천에서 태어난 그는 경성의전에 입학하기 전 가슴 깊이 새긴 이 맹세를 영혼의 청진기 삼아 '인술의 꽃'을 피워냈습니다.
작가 손홍규씨가 그의 청년 시절 이야기를 소설로 담아낸 <청년 의사 장기려>(다산책방)를 펴냈군요.
청년 시절에 초점을 맞춘 것은 "오늘날의 우리 삶을 결정지은 역사적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설명합니다.
어린 장기려에게 들려준 할머니의 얘기가 눈길을 끕니다.
"기려야,너는 옷을 여러 번 껴입는 사람이 되고 싶으냐,아니면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해주는 옷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으냐.이 할머니는 네가 다른 사람들의 옷이 되어줬으면 싶구나.
다른 사람들의 체온을 지켜주는,옷처럼 늘 사람들 곁에 머무는 그런 사람이 되어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구나."
그가 의사의 길을 걸으면서 겪는 시련과 깨달음의 과정도 아릿합니다.
그는 '의학이란 눈 내리는 길을 걷는 것과 비슷했다'고 말했습니다.
'한 걸음,두 걸음,매 걸음이 미답의 영역에 발자국을 남기는 개척의 역사를 이루지만 세 걸음,네 걸음 앞으로 나갈수록 첫 번째 발자국과 두 번째 발자국은 계속해서 내리는 눈에 의해 지워지고 말지 않던가.
그래서 의학은 늘 새롭고도 낯선 영역이다.'
폼 나는 외과 과장직을 거절했을 때 아내의 반응도 콧날을 시큰하게 합니다.
"당신이 결정하실 문제예요.
도립병원으로 가는 것도 좋겠지만,무엇보다 당신 마음속에 거리낌이 없어야 하니까요.
저는 이대로도 괜찮으니 가족 때문에 잘못된 판단을 하는 일은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받은 감동은 작가의 후기까지 그대로 이어집니다.
'대개의 종교인들이 숭배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것들을 자신의 삶으로 만들어버린 이 사내를 기억한다는 건 어쩌면 하나의 고통이지만 기꺼이 감내할 가치가 있는 고통이기도 하다.'
문화부 차장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