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내에서도 원산지표시 확대 실효성 논란

이번 주부터 쇠고기 원산지 의무 표시 대상이 전국 64만개에 이르는 모든 식당과 급식소로 확대된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여론에 밀려 일단 급히 '모든 음식점.급식소'의 '모든 쇠고기'를 원산지 표시 대상으로 규정했지만 현실적으로 운영과 단속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정부 내부에서조차 회의적 시각이 만만치않다.

원산지 단속 제도의 총 책임자인 박덕배 농식품부 2차관은 "그 많은 식당을 모두 단속할 수도 없고, 소비 위축 등의 부작용이 있는만큼 모두 단속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며 이 제도의 전면 확대가 사실상 '선언적' 성격임을 시사했다.

◇ 수입국가, 한.육우 구분 표시해야
이번 주 농산물품질관리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발효와 함께 본격 시행되는 새 원산지 표시 제도는 한 마디로 '모든 식당.급식소의 모든 쇠고기 음식은 원산지를 밝혀야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식품위생법을 근거로 이뤄진 쇠고기 원산지 표시 대상이 '100㎡ 이상 규모의 식당.급식소의 구이.탕.찜.튀김.육회용 쇠고기'였던 것과 비교해 법 적용 범위가 크게 넓어졌다.

급식소를 제외하고 식육 취급업소 기준으로만 따져도 적용 대상 식당 수가 6만6천600여개에서 22만8천300여개로 약 4배로 늘었다.

앞으로 100㎡이상 식당은 메뉴판과 게시판 모두에, 100㎡미만의 경우 메뉴판이나 게시판 중 적어도 한 곳에 소비자가 알아보기 쉽게 쇠고기 원산지를 표시해야한다.

집단급식소.위탁급식영업소 등의 경우 주간.월간 메뉴표를 공개하고 게시판 또는 푯말에 '소갈비(국내산 한우)', '등심(국내산 육우)', '햄버거(쇠고기:미국산)'과 같은 방식으로 원산지를 밝혀야한다.

수입소를 국내에서 6개월이상 기른 뒤 국내산으로 유통하는 경우에는 '소갈비 국내산(육우, 호주산)' 등으로 품종과 수입 국가명을 병기한다.

원산지가 다른 두 종류 이상의 쇠고기가 섞였다면 '갈비탕(국내산 한우와 호주산 섞음)'과 같이 혼합 사실을 알려야한다.

◇ 식당.급식소.유통업체 108만개를 112명이 상시단속
농식품부에 따르면 이번 원산지표시제도의 적용 대상은 작년 9월말 현재 일반음식점 58만3천개, 패스트푸드점 등 휴게음식점 2만9천개, 집단급식소 3만1천개 등 모두 64만3천개다.

정부는 9월까지 계도 기간을 거쳐 10~12월 특별단속 기간에 1천명의 농산물품질관리원(이하 농관원) 특별사법경찰과 지자체 인력 243명, 생산.소비자단체 명예감시원 3천530명을 더해 616개조 4천700여명의 단속반을 운영할 계획이다.

그러나 농관원과 지자체가 다른 업무를 모두 접고 1년 내내 원산지 단속에만 매달릴 수 없기 때문에 이 같은 단속 규모는 특별 단속기간에만 유지된다.

이후로는 농관원 직원 112명(원산지단속 112 기동대)과 명예감시원 500명 등 모두 612명(56개 반)으로 원산지 상시 단속반이 꾸려진다.

아울러 15명의 농관원 직원과 한우협회유통감시단 30명 등 45명(15개 반)으로 구성된 '전문 단속반'은 가장 큰 이슈인 음식점 쇠고기 원산지 단속을 전담하게 된다.

한 마디로 내년부터 상시 단속 체제로 전환되면, 전국 64만개 식당의 소.돼지.닭고기와 밥, 김치류의 원산지 감시 업무가 불과 657명(612명+45 명)에게 집중되는 셈이다.

더구나 이 가운데 대부분인 530명(명예감시단 500명+한우협회감시단 30명)은 법적 단속 권한이 없는 민간인들이다.

특히 112명의 농관원 '112 기동대'의 경우 새로 추가된 식당.급식소 뿐 아니라 지금까지 단속 대상이었던 정육점.마트.수입상사 등 유통업체 44만개도 계속 함께 챙겨야한다.

원산지 단속 업무량이 단순 계산상으로도 44만개에서 108만개(44만+64만)로 2.5배 불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통관.유통 정보를 활용해 ▲ 첩보와 관련된 의심업소 ▲ 과거 위반업소 ▲ 신규 개점업소 ▲ 시민 신고업소 등 4가지 형태의 식당만 집중 단속하면 단속 인력 숫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 농관원 "국.반찬까지 포함시키는데 반대했다"
농관원도 인력 부족을 절감하고 현재 행정안전부에 231명의 충원을 요청했으나, 아직 긍정적 답변을 듣지 못하고 있다.

시행령 입안예고 과정에서 쇠고기 원산지 표시 대상이 '구이.탕.찜.튀김.육회용'에서 '모든 종류의 음식'으로 확대된 것도 논란이다.

농관원 관계자는 "농관원은 사실 국과 반찬 등까지 원산지를 표시하게 하는데 반대했었다.

실효성도 없고 고기 몇 점 국에 들어간 것까지 알아낼 방법이 없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광우병 사태 초기에 여론이 좋지 않으니 본부(농식품부)측에서 그렇게 결론을 내더라. 정책 부처가 정했으니 우리는 따르는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 美쇠고기 풀렸는데..3개월 공백까지
더구나 미국산 쇠고기가 이미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마당에, 모든 음식점에 대한 쇠고기 원산지 표시 단속이 3개월의 계도 기간을 거쳐 10월부터나 본격적으로 이뤄진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당초 정부는 지난 4월 18일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 이후 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 대응 방안의 하나로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를 들고 나왔다.

유통과정에서 한우가 제 값을 받게 한다는 취지도 있었지만, 광우병 사태가 커지자 적어도 국민들이 미국산인지 알고 먹을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민심을 달래보자는 의도였다.

그래서 당초 특별 단속 기간도 6~8월 미국산 쇠고기 유통 초기로 잡았고, 100㎡미만 음식점에 대한 단속도 농산물품질관리법 시행령 발효에 맞춰 7월부터 곧바로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졸속.과잉 행정' 비난에 소규모 영세 식당들의 반발까지 거세지자 정부는 모든 음식점을 대상으로 한 특별 단속을 일단 10월 이후로 미뤘다.

앞으로 추석 성수기를 포함한 3개월동안 100㎡미만 식당은 사실상 원산지 표시 단속의 '사각지대'로 남는다는 얘기다.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기자 shk99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