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미국과 다국적 난쟁이들의 한판 승부.'
베이징올림픽 육상을 한마디로 요약해 주는 말이다.


28개 정식 종목(총 302개 메달) 중 육상에는 가장 많은 47개(남자 24개, 여자 23개)의 금메달이 몰려 있다.

육상은 '더 빠르게(Citius)', '더 높이(Altius)', '더 힘차게(Fortius)'를 외치는 올림픽 정신에 가장 부합하는 종목으로 트랙과 필드, 도로 경기 등이 열리는 주경기장 궈자티위창(國家體育場) 안팎은 세계에서 찾아온 건각들의 경쟁으로 더욱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단거리 강국은 미국, 중장거리는 케냐와 에티오피아, 투척 종목은 러시아와 동구 유럽으로 특화한 가운데 최강국 미국이 얼마나 메달을 쓸어갈 지가 관심사다.

미국은 1896년 초대 올림픽부터 4년 전 아테네대회까지 육상에서만 금 305개, 은 229개, 동 182개 등 총 716개 메달을 쓸어담았다.

아테네올림픽에서도 남자 100m, 200m, 400m를 휩쓰는 등 금 8개, 은 12, 동 5개로 참가국 중 가장 많은 메달을 획득했다.

1988년 서울(13개)-1992 바르셀로나(12개)-1996 애틀랜타(13개) 때에 비하면 금메달 숫자는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미국은 육상과 수영 등 기초종목에서 꾸준히 제 몫을 챙겼고 종합 1위의 발판을 마련했다.

미국은 지난주 대표 선발전을 통해 역대 최강으로 평가 받는 대표팀을 꾸렸다.

남자 육상 100m와 400m 계주에 나설 스프린터 타이슨 가이(26)를 필두로 월터 딕스(200m), 라숀 메리트(400m)와 여자 육상 100m 무너 리, 앨리슨 펠릭스(200m) 등 화려한 얼굴들이 미국 대표로 나선다.

가이가 200m 선발전 도중 왼쪽 허벅지 근육통을 일으킨 바람에 100m와 400m 계주에서도 먹구름이 드리운 게 사실이나 단거리 강국의 체통만큼은 이번에도 반드시 지켜가겠다는 각오다.

미국의 단거리 제패를 가로 막을 최대 경쟁자는 카리브해 육상 강소국 자메이카다.

9초72로 남자 100m 세계기록을 새로 쓴 우사인 볼트(22)를 비롯해 전통의 강호 아사파 파월(26), 여자 100m 케런 스튜어트, 200m 베로니카 캠벨 브라운 등이 맞선다.

자메이카 출신 선수들은 남자 100m, 200m, 여자 200m 등에서 시즌 베스트 기록을 작성해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 올라섰다.

특히 볼트와 파월, 가이가 벌일 100m 탄환 레이스는 베이징올림픽 육상의 백미로 벌써 기대감을 안겨준다.

볼트는 200m에서도 19초83으로 시즌 베스트 기록을 달성하는 등 400m 계주까지 3관왕을 향해 도전 중이다.

단거리 뿐만아니라 팬들의 시선이 집중될 만한 매치업은 제법 있다.

케네니사 베켈레(26)와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35) 두 에티오피아 철각은 남자 육상 10,000m에서 신구황제 대결을 벌인다.

이 부문 세계기록(26분17초53) 보유자인 베켈레는 2003년 파리대회부터 지난해 오사카 대회까지 세계선수권대회를 3연패한 금메달 0순위 후보다.

마라톤 세계기록(2시간4분26초)을 갖고 있는 게브르셀라시에는 베이징의 탁한 공기로 기관지염이 악화될 수 있어 이번 올림픽에서는 10,000m에만 뛴다.

그는 1993년 슈투트가르트대회부터 1999년 세비야대회까지 세계선수권을 4회 연속 우승하고 1996년 애틀랜타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2연패를 달성했던 이 종목에서 고토 회복을 노린다.

쿠바 스프린터 다이론 로블레스(21)와 황색 탄환' 류시앙(25.중국)의 남자 육상 110m 허들 대결도 볼만하다.

로블레스는 지난달 13일 110m에서 12초87을 찍어 류시앙이 2년 전 작성한 세계기록을 100분의 1초 앞당겼다.

메이저대회 타이틀은 없지만 로블레스는 류시앙과 레이스에서 2승2패로 호각세를 보여 베이징에서 혈전을 예고하고 있다.

아테네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를 잇달아 우승한 류시앙이 홈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을 등에 업고 로블레스를 따돌릴 수 있을지 흥미롭다.

남자 해머 던지기 대회 2연패를 꿈꾸는 '황색 헤라클레스' 무로후시 고지(34.일본), 3년 만에 세계기록 수립에 나서는 여자 장대높이뛰기 '미녀새' 옐레나 이신바예바(26.러시아)도 베이징을 빛낼 별이다.

한편 한국은 1996 애틀랜타 대회 이후 4회 연속 올림픽 무대를 밟는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38.삼성전자)와 남자 창던지기 박재명(27.태백시청), 남자 세단뛰기 김덕현(23.광주광역시청) 등 17명이 나간다.

베이징 마라톤 코스를 두 차례나 답사한 이봉주는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에 이어 두 번째 메달 획득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마틴 렐(2시간5분15초) 사무엘 완지루(2시간5분24초), 로버트 체루이요트(2시간7분46초.이상 케냐) 등 올 시즌 좋은 기록을 낸 강력한 라이벌이 대거 참가하는데다 코스도 평탄해 이봉주가 스피드 싸움에서 이들을 제쳐야 메달권 진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cany990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