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의 한국판 '윈도(windows)'로 불리는 무선인터넷 표준 '위피(WIPI)'가 존폐의 기로에 섰다.

방송통신위원회(옛 정보통신부)는 2005년 4월부터 위피를 모든 휴대폰에 탑재하도록 의무화했지만 최근 이 같은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의무 탑재 고시를 폐지하는 방안까지도 거론된다.

업계에서는 의무화 규정이 없어지면 위피가 죽는다는 의무화 찬성론과 이제야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의무화 폐지론이 맞서고 있다.

◆역할 모호해진 위피

폐지론자들은 위피 의무화가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한다고 지적한다.

위피가 애플의 아이폰 같은 외국산 휴대폰의 국내 진입을 막는 장벽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쟁에서 위피가 살아남기 어렵다는 현실도 폐지론에 무게가 실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노키아의 심비안,구글의 안드로이드,리눅스 동맹인 리모 등은 세계적인 운영체제 연합을 형성하고 있는 반면 위피는 국내 업체들만 적용하고 있어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다.

위피 의무화 고수 진영에서는 위피가 그동안 무선망 개방을 진전시켜 중소기업의 콘텐츠 시장 참여 기회를 넓혔다는 점을 강조한다.

앞으로 심비안이나 윈도 모바일 등 외국산 OS를 탑재한 단말기가 국내에 들어오더라도 이들 OS에 위피를 얹으면 어떤 OS에서든 콘텐츠를 호환시킬 수 있다며 위피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김선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리눅스 모바일소프트웨어 플랫폼 연구팀장은 "위피가 외국산 범용 OS와 경쟁하기보다는 콘텐츠 호환성을 높여주는 소프트웨어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면 재검토는 폐지 수순?

첨예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위피 의무화 정책은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다.

방통위는 지난해 3월 KTF가 위피 없는 휴대폰을 출시하는 것을 허용한 데 이어 지난 5월에는 캐나다 리서치인모션(RIM)사의 블랙베리폰 국내 출시를 법인에만 판매한다는 조건을 붙여 허가했다.

위피 탑재 의무 대상을 모든 휴대폰에서 무선인터넷 기능이 있는 휴대폰으로 축소했고,이제는 법인 대상 PDA마저 예외로 분류했다.

매번 새로운 사례가 생길 때마다 예외조항을 양산하는 것보다는 표준 준수 여부를 업계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위피 의무화 해제 이후 혼란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위피 개발회사인 아로마소프트 임성순 사장은 "2003년 표준 제정 이후 정부 정책을 믿고 위피 기반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를 개발해온 업체가 수백여곳에 이른다"며 "이들이 정책 변경으로 일시에 사업 기반을 잃거나 그동안 쌓은 노하우를 놓치지 않도록 정부의 사전 준비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