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음식점 '원산지표시제' 첫날 "골치 아파 갈비탕 뺐어요"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가 크고 작은 모든 음식점과 급식소로 확대된 첫날인 8일 점심시간 서울 서소문로의 J음식점.손님과 음식점 주인이 농반진반의 대화를 주고 받고 있었다.

"아줌마 고기 좀 주세요.저,쇠고기 원산지표시 맞죠?" "맞아요.허위로 했다간 손님들이 안 와요.하지만 귀찮네요.괜히 이런 거 해가지곤…."

인근 회사 동료와 함께 점심식사를 하러 온 김정민씨(40)는 "원산지 표시가 돼 있으면 아무래도 마음이 놓인다"면서 "표시가 안 된 음식점 가기가 앞으로 좀 그럴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 주문을 받은 주인 정모씨는 "앞으론 모르지만 지금 당장은 솔직히 표시제가 싫습니다.

늘 같은 나라의 고기만 오는 게 아닌데 시도때도 없이 표시를 바꿔야 하고 육수까지 표시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골치 아프다"고 말했다.

300㎡ 이상 음식점에서만 적용돼온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가 전면 확대된 이날 대형음식점과 소형음식점에선 비슷한 양상이 빚어졌다.

손님들은 원산지 표시가 제대로 된 것인지 알 길이 없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 낫다는 반응이 주류였다.

하지만 첫 시행대상에 포함된 300㎡ 이하 음식점과 분식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서울 명동에서 분식점을 운영하는 박모씨는 "갈비탕 전문점이 아니어서 중간 도매상으로부터 육수를 받아오는데 도매상 말만 믿고 원산지를 표시하는 건 불안하다"며 "갈비탕처럼 고깃국물이 들어가는 메뉴는 빼고 장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골치 아픈 일이 생기느니 차라리 팔지 않는 게 맘 편하다는 주장이었다.

홍보부족 탓인지,의지부족 탓인지 남대문시장 먹자골목 내 10여개 음식점들에선 여전히 원산지 표시를 찾아볼 수 없었다.

M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해장국 순대 김밥 등 고기가 들어가는 메뉴만 20여가지가 넘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고기의 원산지를 어떻게 일일이 표시할지 막막하다"고 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혜화동 숯불구이집에서 만난 최인영씨(35)는 "광우병 시위 이후 솔직히 고기먹는 게 조심스러워졌다"면서 "표시가 돼 있으면 아무래도 선택하기 쉽지 않겠느냐"며 표시제에 호의적이었다.

종로 A냉면집을 찾은 박민구씨(55)는 "광우병 사태가 낳은 과잉행정이 아니겠느냐"면서도 "소비자가 고기원산지를 알 수 있다는 건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중구 충무로 C고기집을 찾은 윤정연씨(44)는 "내가 먹는 고기가 어디서 온 것인지를 알 권리가 소비자에게 있는 것 아니냐"며 "주인들이 성실하게 표시하면 음식문화가 선진화될 수 있다는 기대도 갖는다"고 말했다.

정부는 원산지 표시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허위표시 음식점을 신고한 사람에게 유통 규모에 따라 최대 2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하고,미표시의 경우엔 일률적으로 5만원을 주기로 했다.

100㎡ 미만 소형 업소에 대한 신고포상금은 없다.

최진석/이재철/김인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