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택 < 중앙대 교수·경제학 >

정부는 현 경제상황을 위기로 규정했다.

심지어는 우리 경제가 국난상황에 처해 있고 세계는 3차 원유파동의 문턱에 있다고 한다.

우리 경제가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러나 1970년대 두 차례에 걸친 원유파동과 비교하면,아직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1970년대의 원유 위기는 공급교란에 의해 발생했다.

중동에서 전쟁이 터지고,민중혁명이 일어나 원유공급이 갑자기 줄었기 때문이다.

이 당시에는 불과 몇 달이 안 돼 원유가격이 3배나 치솟았다.

이에 따라 석유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져 많은 국가에서 배급제가 실시됐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두 자리 이상의 인플레이션을 겪었고 석유공급 부족으로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사태가 속출했다.

우리나라는 치솟는 원유 가격을 감당하지 못해 국가파산 직전까지 갔다가,유럽은행들의 도움으로 겨우 위기를 모면했다.

중동 정세가 호전되고 석유공급이 정상적으로 회복되고 나서야,경제는 회복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현재의 원유가격 급등은 지속적인 수요 확대에 기인한다.

최근까지 세계경제는 장기 호황국면이 유지됐고,특히 브릭스(BRICs)로 대표되는 신흥시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이에 따라 석유와 같이 재생 불가능한 자원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대됐다.

일반적으로 수요견인 인플레이션은 노동수요 증대로 인한 임금상승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중국,인도와 같은 노동 풍부국으로부터 저렴한 생필품이 생산돼 세계시장에 계속 공급되면서 임금상승은 최소화될 수 있었다.

그러다가 달러화 약세로 인해 국제 투기자본이 인플레이션 헤지 수단으로 원유보유량을 대폭 늘린 것이 원유가격 급등을 촉발했다.

그러나 투기는 실물시장의 수급불균형이 지속적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원유수급에 문제가 없는데 투기자본이 매점 매석을 통해 장기간 석유가격을 끌어 올릴 수는 없다.

또한 수요견인에 의해 원유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원유가격 급등은 세계경제를 침체시켜 그 자체로 석유류 수요를 감소시키기 때문이다.

원유가격 상승이 어느 측면에서 발생했건,이는 비용상승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이로 인해 실질소득이 감소해 생활이 어려워지고 노동자들은 임금인상을 요구하게 된다.

원유가격 상승에 따른 부담은 누군가가 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비 상승을 가격 전가(轉嫁)나 임금인상으로 전부 보전하게 되면 인플레이션은 더욱 심화된다.

석유를 비롯한 실물 측면의 공급확대 없이 명목소득만 올라봐야 수요견인 인플레이션만 유발하고,이런 상황이 가속화되면 경제는 엉망이 된다.

그러므로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초기에 인플레이션에 따른 손실을 어떻게 분담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하다.

1970년대의 원유파동 때는 군사독재 정부에 의해 강압적으로 고통분담이 이뤄지고 효율성 위주의 정책으로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민주정부는 그럴 수가 없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고통분담안을 마련하고 신뢰성 있는 정책을 통해 국민의 불안심리를 최소화시켜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정부를 믿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고통을 감내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을 통합으로 이끌어 내는 리더십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국가 리더십이 실종된 현 상황은 최악의 상황이라 할 만하다.

정부가 빠른 시일 내에 리더십을 회복하지 못하면,외부로부터의 작은 충격도 우리 내부에서 소화시키기는커녕,오히려 확대 재생산시키게 된다.

사회는 더욱 혼란에 빠지게 되고 우리경제는 끝없는 수렁에 빠질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현재 우리 경제,아니 우리나라는 국난의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