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때 달러기습 매도…순식간에 30여원 급락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9일 오후 1시께.점심식사를 위해 밖으로 나온 외환딜러 A씨의 휴대폰에 '환율 1000원 붕괴'라는 문자 메시지가 떴다.
순간 정신이 멍해진 그는 곧바로 숟가락을 내려놓고 회사로 달려갔다.
"설마…"하며 컴퓨터 모니터로 황급히 달려간 그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점심 먹으러 나올 때만 해도 1030원 근처에서 움직였던 환율이 '1000원 선을 지키느냐,마느냐'의 상황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30여원이나 떨어진 사실을 확인한 그는 "완전히 허를 찔렸다"며 "정부가 이렇게까지 공격적으로 시장 개입에 나설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점심시간 이용해 '매물폭탄'
정부는 이날 모두 40억~50억달러로 추정되는 매도 물량을 쏟아냈다.
물량도 물량이지만 시장개입 방식이 예전에는 볼 수 없을 만큼 과감하고 공격적으로 바뀌었다.
정부는 이날 세 차례 매도 개입에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첫 번째 개입은 '미세조정'이었다.
개장 초 환율이 전날보다 6원가량 내린 1026원 선에서 움직이자 달러 매도 물량을 서서히 풀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정부의 대응방식이 180도 바뀌었다.
외환딜러들의 긴장이 풀린 낮 12시40분쯤 대규모 달러 매도 공습에 나섰다.
순간 원ㆍ달러 환율 1000원 선이 무너졌다.
점심시간에 맞춰 터뜨린 '도시락 폭탄'에 시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대기 매수세가 많이 깔려 있던 1025원 선에서 수세적인 환율 방어에 주력하다 거래가 별로 이뤄지지 않는 점심시간에 정부가 대규모 달러 매물을 쏟아내 환율을 순식간에 끌어내렸다"며 "점심식사로 자리를 비운 틈을 파고들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정부의 '환율 공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장 막판 종가 관리 차원에서 또다시 대규모 매도 물량을 쏟아냈다.
환율은 다시 996원대까지 떨어졌다가 전날보다 27원80전 내린 1004원90전으로 거래를 마쳤다.
외국계 은행의 한 외환딜러는 "환율이 하루 만에 30원 가까이 급락하면서 엄청난 손실을 봤다"며 "딜러들이 모두 아연실색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외환시장 '공격'부작용 우려도
정부의 이 같은 외환시장 개입은 환율의 급등락을 완화하는 '미세조정'차원을 뛰어넘어 '공격적'이었다는 것이 외환시장 관계자들의 평가다.
주식시장의 작전세력처럼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내 기습적으로 공격을 단행한 것은 외환시장에 '전쟁'을 선포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의 개입은 당장 효과를 냈다.
지난 주말 1050원40전이던 환율은 정부와 한국은행이 '환율 공조'를 선언한 7일 이후 사흘 만에 45원50전이나 빠졌기 때문이다.
물가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환율 안정이 불가피하다는 정부의 의지는 이제 분명해졌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하면서 환율을 떨어뜨리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비판하는 의견이 많다.
외환시장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외환시장의 '과도한 쏠림현상'을 해소하겠다고 해놓고 이런 식으로 무리하게 개입하면 정반대 방향의 또 다른 쏠림현상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홍범 경상대 교수(경제학)는 "정부가 환율 개입을 너무 쉽게 생각하면 외환시장의 변동성만 키울 수 있다"며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시장 논리를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