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길 < 국가경영전략연구원 원장 >

작년 초 런던시가 발표한 세계 금융도시의 경쟁력 랭킹에서 서울은 42위에 그쳤다. 아태지역의 8개 금융도시 중 꼴찌였다. 금년 랭킹에서는 아예 5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우리는 외환위기 이후 상당한 경제개혁을 추진해왔다. 특히 지난 정부가 서울을 국제금융중심지로 발전시키겠다고 선언한 후 외자유치 및 금융발전을 위한 개혁을 가속했다. 그러나 국제적 평가는 오히려 저하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여전히 투명성과 합리성,공정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특히 외국기업인들은 한국인들에게 반외자정서가 강하다고 믿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금융감독위원회는 2년 전 론스타펀드로부터 외환은행을 인수하겠다는 국민은행의 계획을 무산시켰다. 작년에는 세계굴지의 금융그룹인 HSBC가 외환은행을 인수하겠다고 나섰으나 역시 승인을 보류하고 그 처리를 이명박 정부의 금융위원회로 넘겼다.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매각해 5조원 규모의 수익을 챙겨 나가려하자 저지한 것이다. 외국인들은 이를 반외자정서의 대표 사례로 꼽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을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고,외국인 투자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국제사회는 이 대통령의 약속에 대한 가장 중요한 시금석으로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허용여부를 지켜보고 있다. 과거 금감위는 외환은행의 헐값매각 의혹 및 외환카드주가 조작혐의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인 만큼 '법률적 불확실성' 때문에 외환은행의 매매를 승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헐값매각 의혹 재판에 론스타는 연루돼 있지 않다. 그렇다면 문제는 외환카드 관련 재판인데,이는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혐의사안 발생 이전에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의 지배주주 자격에 소급적으로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이 론스타와 HSBC 측의 주장이다.

또 관계규정상 당국에 의한 승인기준은 오로지 현재 은행을 인수하고자 하는 HSBC가 지배주주로서 적격인가 여부라는 것이다. 결국 외환은행 매매를 제약하는'법률적 불확실성'은 없다는 것이다. 한편 은행 측은 새로운 경영주의 영입이 지리하게 미루어지며 해외시장에서 발돋움하기 위한 주요 전략적 결정이 실기(失機)하고 있다고 조바심을 내고 있다.

국제 자본시장과 금융계의 시각은 금감위의 입장이 반외자정서를 추종하는 정치적 조치로,한국의 법과 규정에 위배되고 나아가 국제금융중심지 및 외국인투자유치 정책에도 역행한다는 것이었다.

이명박 정부의 새로운 정책기조에 따라 금융위원회 측은 "이른 시일 안에 (외환은행) 문제를 풀 수 있는 방안을 찾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촛불시위 사태 이후 "쇠고기 문제에서 볼 수 있듯이 국민정서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며 과거 금감위의 입장으로 후퇴하는 듯했다. 이는 "혹시나"하고 한국의 변화를 기대하고 있던 국제사회에 "역시나"하는 실망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국내 기업인들과 외국인투자가들 모두 촛불시위 사태 이후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이 표류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동향도 심상치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체 없이 경제정책 비전을 점검,보완해 재천명하되 한국을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확인해야 한다. 대외적으로는 내외기업을 차별없이 법과 규정을 합리적으로,공정하게 운영하겠다는 의지에 변함이 없음을 확인해야한다. 마침 론스타와 HSBC 간 계약 만료(7월 말)를 앞두고 외국인투자가들이 금융위의 대응에서 이명박 정부의 의지를 읽으려 하고 있다. 여기에 기회와 대책이 있다. 외환은행 문제에 대해 명료하고 설득력 있는 해결 대책 내지 원칙을 밝힘으로써 확고한 메시지를 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