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어패럴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와이셔츠(화이트 셔츠.White Shirts) 전문업체.1953년 설립돼 올해로 56년째 와이셔츠 한우물을 파 왔다.

195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직장 생활을 해 본 남성들이라면 '아, 그 브랜드' 하며 무릎을 칠 만한 썬,국화,장미,헬리우스 등 국산 와이셔츠 브랜드로 명성을 누렸다.

1993년부터 라이선스 브랜드인 '파코라반'을 스페인에서 도입한 이후 중소 와이셔츠 제조업체 중에서는 최대인 연간 350억여원의 매출을 올리면서 와이셔츠 명가로서의 입지를 굳혀 가고 있다.

창업주인 장덕화(1905~1988) 전 회장이 대구에서 미싱 두 대를 갖고 시작했던 이 회사는 현재 2대인 장성덕 사장(63)에 이어 최근 장우석 이사(31)가 회사에 합류, 3대째 가업을 대물림하고 있다.

◆"썬표 와이셔츠 아니면 대구 신사 아니었죠"

경북 문경의 한 농가에서 태어난 장 전 회장은 '농사일은 죽어도 싫다'며 13세 나이에 대구로 야반도주했다. 일본인 섬유 가게에서 점원 노릇을 하며 장사 방법을 익힌 그가 와이셔츠 사업에 나서기로 결심한 것은 한국 전쟁이 끝난 뒤 일제 와이셔츠가 시장을 장악한 것을 눈여겨 보았기 때문이었다. '천조각 이어붙이면 다 옷인데,저거 하나 못 만들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사업가적 기질이 뛰어났다는 것.태양봉제공업사를 차리고 일제 미싱을 들여와 생산에 나섰지만 첫해에는 단 한 장도 못 파는 수모를 겪었다. 입어 본 느낌이 어딘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원단의 색감과 질감,봉제 방법 등 세 박자를 잘 꿰는 숙련공이 없었고 디자인의 미묘한 차이도 모르셨던 거죠."(장우석 이사)

그렇지만 우여곡절 끝에 1954년 처음 내놓은 썬표 와이셔츠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당시 한 벌에 200원이었던 이 와이셔츠는 '싸지만 품질은 일제랑 비슷하다'는 입소문을 타고 시장에 내놓기가 무섭게 팔려 나갔다. '같은 값이면 국산을 사자'는 애국심도 한몫했다.


◆"1억원 빌리면 1억원짜리 적금 들어라"

창업주인 장 전 회장은 돈 거래에 관한 한 유난히 엄격했다. 1974년 29세 나이에 서기로 취직한 장 사장은 "자기가 감당할 능력(돈)의 70%만 가지고 사업을 해야 한다고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며 "1억원을 빌리면 반드시 1억원짜리 적금을 드는 원칙도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했다. 자식에겐 엄격했지만 직원들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55년간 임금과 상여금을 한 번도 미룬 적이 없는 전통이 대표적인 사례다. 장 사장 역시 1995년 5000만원의 추석 상여금을 주기 위해 1억8000만원짜리 보험을 깨 6000만원의 손해를 본 적도 있다. 당시 보험사에서 지급한 돈은 1억2000만원이었다.

회사는 장 사장이 1987년 건강 악화로 1년간 병원 신세를 진 데 이어 장 전 회장마저 1988년 노조 파업 충격으로 자리에 누운 지 한 달 만에 타계하는 악재가 겹치면서 매출이 4분의 1로 줄어드는 등 흔들리기 시작했다. 거래하던 하청업체들이 해외 유명 라이선스 브랜드를 너도나도 들여와 업계 선두권으로 치고 올라온 것.40여년간 유지해 온 토종 브랜드를 지키겠다는 자존심도 중요했지만 당장 회사가 살아나는 게 급했다.

장 사장은 1993년 석 달간 대구에서 서울로 매일 출퇴근한 끝에 파코라반 라이선스를 도입한 롯데백화점으로부터 서브 라이선스를 따 내는 데 성공했다. 이 덕택에 그 해 매출이 전년도 10억원에서 70억원대로 껑충 뛰었다.

◆내 브랜드 다시 띄운다


태양어패럴은 이제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라이선스 브랜드만으로는 회사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자체 브랜드인 헬리우스를 파코라반만큼 유명한 세계적 브랜드로 키울 계획이다. 2002년 미국 유학 중 가업을 잇기 위해 귀국한 장 이사가 글로벌 전략의 사령탑 역할을 맡고 있다. 그는 올 들어 중국을 서른 번 이상 다녀왔다. 베이징에 첫 해외 매장을 낼 예정이다.

그는 "중국 진출을 계기로 동남아시아는 물론 유럽 미국 남미 등으로의 국산 브랜드 진출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회사 이미지 관리에도 더욱 신경 쓸 생각이다. 그러나 55년간 써 온 회사명과 태양 형상의 현재 로고를 바꿔야 한다는 사내외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 "패션 기업은 전통이 생명입니다. 촌스럽든 개성이 없어 보이든 남은 50년을 끝까지 지켜 내 100년 가업을 일궈야죠."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