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하강과 물가 불안에 사이에서 고민하던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물가쪽으로 한발짝 무게중심을 옮겼다. 이번 달 기준금리는 동결됐지만 이날 이 총재의 관심은 경기보다 물가였다. 채권시장에서도 "한은이 향후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2차,3차 물가충격 우려

이 총재는 이날 유례없이 강한 톤으로 물가 불안을 언급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내년도 물가 전망.그는 "내년에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한은 물가관리목표의 중심선인 3%대로 들어오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고유가 여파 등으로 인해 지난 6월 5.5%(전년 동월 대비)까지 치솟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앞으로도 상당기간 불안한 양상을 지속할 것이란 얘기다.

더 큰 문제는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다. 이 총재는 "물가 급등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높이고 이것이 임금 인상과 같은 2차,3차 파급효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며 "이렇게 되면 우리 경제는 고물가가 고착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가 경기 하강 압력과 물가 상승 압력이 공존하는 현 상황에서 "한은 본연의 임무(물가 안정)"를 강조한 이유다.

박종연 우리투자증권 채권애널리스트는 "물가 불안이 지속되면 결국 경제의 안정 성장 기조가 무너질 수 있다는 뜻"라며 "이 같은 일이 현실화됐을 때 우리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이 경기 하강 압력보다 크다고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금리 인상 가능성 높아져

물가 불안을 잡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 총재는 의미심장한 발언들을 쏟아냈다. "통화정책의 기본은 금리정책"이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한은의 긴축정책 수단 중에는 지급준비율 인상이나 은행권에 대한 총액한도대출도 있고 과거에도 이 같은 방법을 쓴 적이 있지만 정석은 역시 금리 인상이란 점을 다시 확번 확인한 셈이다.

최근 정부와 한은이 물가 안정을 위해 환율을 공격적으로 끌어내리고 있는 데 대해서도 "환율로 물가를 안정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지금은 외환시장의 과도한 쏠림현상을 막기 위해 환율 하락을 유도하고 있지만 물가 안정을 위해서는 통화정책이 병행돼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신동준 현대증권 채권분석팀장은 "연내에 두 번 정도 금리 인상이 예상되며 이르면 다음 달에도 가능할 것 같다"며 "미국이나 유럽연합이 긴축정책에 가세한다면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상당부분 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수 위축과 가계빚이 걸림돌

하지만 한은이 금리 인상에 나서는 데는 걸림돌도 적지 않다. 경기 하강 압력,특히 내수 위축이 심각하다는 점에서다.

권순우 삼성경제연구소 거시경제실장은 "금리를 올리면 소비 등 내수가 급격히 위축될 수 있다"며 "금리를 인상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의 물가 우려에 대해서도 "정부가 하반기로 예정된 공공요금 인상 등을 억제해 물가 불안 확산을 막았으면 좋겠다는 의미지 실제 금리를 올리겠다는 뜻으로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박 애널리스트도 "우리나라 가구 중 상당수가 주택담보대출로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상태"라며 "기준금리가 인상되면 가계부문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