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상한제 1년만에 사실상 백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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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해양부가 추진하겠다고 밝힌 부동산규제 완화는 재건축 규제 완화와 분양가 상한제 수정 등 두 가지가 골자다.
재건축 조합원의 자격을 넘기는 것을 허용하고 민간택지의 택지비 인정방식도 현행 '감정가' 대신 '매입비'를 인정해 주겠다는 내용이다.
새 정부 들어 시행시기를 저울질해오던 당국이 전격적으로 이 같은 규제 완화 방침을 밝힘에 따라 '선(先) 집값 안정-후(後) 규제 완화'라는 정부의 주택정책 기조가 바뀌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최근 서울ㆍ수도권 집값이 간신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정부가 규제 완화 방침을 천명해 또다시 집값 불안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재건축 시장 풀리나
국토부가 재건축 규제 완화에 착수한 것은 최근 집값이 하향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는 판단에서 나왔다. 재건축 추진 단지가 몰려 있는 강남권의 경우도 세제ㆍ대출 규제 등이 여전한 데다 반포ㆍ잠실 등의 입주 물량이 풍부해 집값 불안으로 이어질 우려가 크지 않다고 정부는 보고 있다.
정부가 규제 완화를 검토 중인 재건축 관련 제도는 △조합원 지위양도 금지 △소형평형ㆍ임대주택 의무건립비율 제도 등으로 대부분 집값이 급등하던 노무현 정부 시절에 도입된 규제들이다.
이 가운데 조합원 지위(입주권) 양도금지가 가장 먼저 풀릴 것으로 보인다. 현행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르면 투기과열지구 안에서 재건축 추진단지가 조합 설립인가를 받으면 조합원 자격(입주권)을 소유권 이전등기(입주) 때까지 다른 사람에게 되팔 수 없다.
국토부는 현재 재건축 조합원 입주권을 언제든지 거래할 수 있도록 전면 허용하거나 사업승인 또는 관리처분인가일 이후부터 금지하는 방안 등을 놓고 시장에 미칠 영향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는 당초 브리핑에서 재건축 초과 부담금까지 완화하겠다고 언급했다가 집값이 급등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자 서둘러 해명자료를 내고 "오히려 규제 완화로 개발이익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재건축 초과이익 부담금제도를 강화하는 등 개발이익 환수장치를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번복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의 경우 조합 설립인가를 받아 후속 절차가 진행 중인 재건축단지는 개포주공1단지,가락시영 등 3만6344가구(64개 단지)에 이른다. 여기에다 아파트가 분양됐지만 아직 입주하지 않은 재건축 아파트 조합원분 3만3128가구(43개 단지ㆍ일반분양분 5894가구 제외)를 합치면 최대 6만9400여가구가 입주권 전매 규제완화 혜택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소형주택 의무비율이나 임대주택 의무건립 규정 역시 이르면 하반기부터 단계적으로 완화될 전망이다. 소형 의무비율 제도는 서울 등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안에서는 재건축 아파트의 전체 건립물량 중 60% 이상을 전용 85㎡ 이하로 짓도록 한 제도를 말한다. 2003년 9월 단기차익을 노린 투기억제와 소형주택 수급불균형 해소를 위해 도입됐었다. 소형의무비율이 풀릴 경우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등 강남권 중층 단지들의 재건축 추진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가격이 꿈틀거릴 것으로 전망된다.
◆분양가 상한제 무력화되나
정부는 민간택지에서 공급하는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의 택지비를 산정할 때 감정평가 금액 외에 건설사가 땅을 산 매입가도 감안해주고 민간택지 주상복합 아파트의 경우 택지비 외에 추가로 가산비를 인정하는 것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그동안 건설업계가 분양가 책정과 관련해서 줄기차게 주장해온 '민원'이다.
정부 방안은 상한제 아파트의 원가 계산 3대 요소(택지비+기본형 건축비+가산비) 가운데 택지비와 가산비를 동시에 손질하는 큰 폭의 '수정안'이다.
이렇게 될 경우 건설업계는 가격 책정의 부담을 덜 수 있지만 신규 분양 아파트의 분양가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상한제가 사실상 1년만에 무력화되거나 백지화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고 있다.
섣부른 규제 완화가 자칫 집값 불안을 재연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 전문가는 "정부의 규제 완화 시그널만으로도 집값에 곧바로 영향을 미칠 정도로 심리요인이 크게 작용하는 주택시장의 특성상 정부의 판단과는 정반대 양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며 "극도로 위축된 지방의 미분양 주택을 위한 추가대책보다 강남권을 대상으로 한 규제 완화 방안이 먼저 나오는 것은 순서가 바뀐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강황식/정호진 기자 his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