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 <시인>

여름 해변은 매순간이 축제다. 시원하게 끓어오르는 축제의 흥겨움이 샴페인 거품처럼 어디서나 콸콸콸 흘러 넘친다. 샴페인 병을 딸 때 '팡!'하고 터져나오는 소리처럼 몸속에 틀어막혀 있던 탄성들이 목을 타고 넘쳐흐를 때,술에 취하듯 나는 바다에 취한다.

태양이 작열하는 해변에서 누가 바다의 유혹을 쉬 뿌리칠 수 있을 것인가. 수평선에서 바다는 하늘과 입을 맞추고,해변에서 바다는 뭍과 포옹을 한다. 혀와 혀를 나누고 살과 살을 문지르고 핥으며 소쿠라진다. 생의 찬가를 부르는 것만으로도 이 하루가 너무 짧다는 듯이,수줍게 망설이는 감각들을 충동질하여 파도 속으로 뛰어들게 한다.

반라가 된 몸을 끝없이 애무하며 미끄러지는 당초무늬 물결,꽃가루처럼 묻어나는 햇살,숨막히는 야생의 향기가 후끈후끈 어질머리를 앓게 한다. 방금 곁을 스쳐간 여자의 곱슬하게 말린 머리카락이 바람을 타고 와서 어깨를 스쳤을 때,머리카락에 묻은 그 땀내음은 짭짤한 갯내음과 같은 것이었다.

'아아' 바다 앞에선 그저 직정적인 감탄사만 터져나온다. 원시음에 가까운 모음,그것을 '바다'에서 자음을 떼어버린 뒤의 나머지 모음과 같다고 말했던 게 누구였던가. 그렇다면 모음을 찾아온 사람들은 '바다'의 자음일 것이고,모자의 결합이 바로 '바다'라는 말이 아닌가. 바다 앞에서 우리는 '바다'가 된다. '아아' 가늠할 길 없는 시원에 입시울소리 'ㅂ' 과 혓소리 'ㄷ'을 붙여 호명케 한다. '바다',이 말을 최초로 혀에 올렸던 사람은 얼마나 싱그럽게 출렁였을 것인가.

여름 바다에서는 풍경을 애써 해석하고 싶지 않다. 풍경과 그저 사랑을 나누고 싶어진다. 해변을 오르내리는 파도에 발목을 적시며,부드러움의 극까지 가서 드러누운 모래밭의 맨살과 나의 맨살이 닿는 감촉을 한껏 누려보고 싶어진다. 그렇게 걷다가 무료하면 축제의 인파 속으로 빨려들어도 좋으리라.해변 건너 길가엔 여름내 볼거리 맛거리가 넘쳐나고,정해진 축제기간 외에도 백사장 무대 위에 간간이 공연물들이 올려진다. 그곳에 들러 타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의 사투리를 감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사방의 사투리가 다 모여든 해변은 사해(四海)에서 모여든 파도소리처럼 저물 줄을 모른다.

여름 해변에선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나누고,파도가 들려주는 생음악에 맞춰 춤을 춰도 된다. 은밀하게 밀려왔다 밀려가는 욕망을 억누르지 못하고 물속에서 방금 나온 아가씨를 인어아가씨에 홀린 듯 따라다녀도 그리 큰 흠이 되지 않는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수영 팬티 한 장 달랑 걸친 청년이 충일된 감정에 취해 구애를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여름 바다다. 바다는 청년에게 거리낌없이 사랑할 권리를 부여한다. 세상에서의 모든 탈을 벗어버리고 오직 순정한 열망 하나만으로 충분한 사랑의 꿈을 꾸게 한다.

'바다에 왔으니/이제 모든 일이 잘 될 거야//시가 잘 쓰여질 거야./사랑도 잘 풀릴 거야//푸른 녹색의 힘으로 끓어 넘치며 파도는/나의 좌절과 우울과 소외,그리고 헛된 절망을 씻어 빛냈으니//이제 모든 것들의 깊은 속으로 난 계단을/헛디디지 않고 잘 내려갈 거야.'

시인 이하석의 말대로 '바다는 잠깐 동안 비애가 아니다'.지속되지는 못하지만 '잠깐'의 한순간이나마 바다는 삶에 찌든 가슴에 건강한 낙관주의를 선물한다. 시대가 비록 '해변의 묘지'와 같다고 할지라도,바다에서 만큼은 발레리처럼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라는 가슴 벅찬 생의 의지를 와락 껴안게 한다. 싱싱함을 잃지 않는 바다의 낙천주의는 아무리 들어도 물리지 않는 음악과 같다. 파도가 밀려온다. 갯내음이 폐부 깊숙이 빨려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