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의 화성(華城)은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 자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일 뿐만 아니라 화성 건설과정을 자세하게 담은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 역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화성성역의궤'에는 화성 건설과정에서 관청 사이에 주고받은 공문서,임금의 의견과 명령 등 모든 논의과정이 기록돼 있으며,각 시설물의 위치와 모습 및 비용 등이 낱낱이 기술돼 있다. 특히 공사 참여자에 대해서는 이른바 '공사실명제'를 도입해 석공 아무개가 어느 고장 출신이며,어느 현장에서 며칠을 일해 얼마의 돈을 품값으로 받았는지 알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공사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한편 참여자 개개인에게도 책임감과 자부심을 부여해 공사품질을 높이는 데도 기여하도록 했다고 한다.

정부에서도 이러한 선례를 본받아 1998년 '사무관리규정'에 '정책실명제'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2004년에는 '정책품질관리제도'를 도입해 정책의제 설정단계에서부터 정책결정 및 집행,평가에 이르는 모든 내용이 관리되고 일반 국민의 요청에 따라 공개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책실명제 실시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인 대외 통상협상에 있어서는 일반 정책의사결정과 같이 모든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례로 한·미 FTA 협상의 경우만 하더라도,협상과정에서 양측이 주고받은 문서는 미국과의 합의에 따라 협정발효 후 3년이 지난 이후에야 공개하도록 돼 있다.

물론 정부가 모든 협상과정을 낱낱이 밝혀야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FTA와 같은 통상협상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므로 협상과정이나 내용을 전면 공개하는 것은 앞으로의 협상에 있어서도 협상카드를 미리 내 보이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협상과정을 기록에 남기고 이를 대외에 공개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삼는다는 것,즉 '협상실명제'를 도입한다는 것은 협상참여자 개개인이 협상결과에 대해 국민에게 책임질 수 있도록 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러한 기반이 마련된다면 정부로서도 국민에게 보다 자신감을 가지고 떳떳하게 협상과정과 결과를 설명하고 납득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정재훈 지식경제부 무역정책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