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낮 도쿄시내 가스미가세키의 외무성 청사.현관 로비를 지나 1층 복도로 들어선 순간 지하실에 들어선 것 아닌가 하는 느낌에 당황했다. 20m 길이의 복도 전체에 조명이 꺼져 있었던 것.어둑어둑한 복도를 걷자 센서가 작동해 사람이 지나갈 때만 잠시 전등이 켜졌다 다시 꺼진다.

외무성을 나와 시내버스를 탔다. 도쿄도가 운영하는 이 버스는 정류장에 설 때뿐 아니라 신호대기 때도 시동을 끈다. 엔진 공회전을 막기 위해서다. 버스기사 나카무라 쇼이치씨(46)는 "자동차 시동을 걸 때 소모되는 연료는 공회전 3~5초 분량과 같다"며 "6초 이상 정지할 때는 시동을 끄는 게 경제적"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에너지 절약에 정부가 가장 솔선수범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저탄소 사회'를 모토로 내걸고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내놓았다. 점차 강화되는 국제 환경규제에 대응한다는 취지이지만 고유가 시대에 '녹색성장 국가'를 지향한다는 뜻도 크다.



일본 정부는 저탄소 사회 구축을 통해 고유가 시대에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일본의 후쿠다 야스오 총리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현재보다 60~80% 감축하고 올 가을 온실가스 배출량 거래 제도를 시험적으로 도입하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하는 '후쿠다 비전'을 지난달 발표했다.

후쿠다 총리는 2020년까지의 중기 목표에 대해서는 2005년에 비해 14% 삭감이 가능하다며 처음으로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했다. 유럽연합(EU)이 주장해온 1990년 대비 20% 삭감 목표와 비슷한 규모다. 후쿠다 비전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 협력 방안으로 개발도상국 지원을 위한 환경기금에 최대 12억달러를 출연하고,에너지절약 기술 개발을 다국간에 추진하는 '환경.에너지 국제협력 파트너십'을 제안하고 있다.

또 국내 대책으로는 배출량 거래 제도 도입 외에 올 가을 세제 개편시 환경을 중시한 환경세 도입을 추진키로 했다. 에너지 절약을 위해 서머타임(일광절약시간) 제도도 조기 도입할 계획이다. 태양광 발전을 2020년까지 10배로 늘리고,차세대 에너지 절약차 개발에 적극 나설 방침도 분명히 했다.

후쿠다 총리는 저탄소 사회 실현을 '혁명'에 비유하며 기업과 가정에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발상의 전환을 촉구했다. 그는 우선 에너지 절약 주택과 전자기기 개발 등 기술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온난화 대책이 경제성장의 저해 요인이 아니라 비즈니스 기회라는 쪽으로 발상을 바꿀 것을 주문했다.

후쿠다 비전은 2013년 이후의 국제적인 온실가스 감축 체제(포스트 교토의정서)를 갖추는 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에 서기 위한 포석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후쿠다 비전에 포함된 저탄소 사회 이행은 일본이 고유가 시대에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체제를 구축한다는 의미가 더욱 크다. 고유가 시대라는 패러다임 변화에 일본이 빠른 변신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도쿄=차병석 특파원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