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교향악단의 변신이 눈부시다. 2005년 6월 재단법인으로 바뀐 지 3년여 만에 연주나 경영 실적 등 모든 면에서 한국 최고 수준으로 올라섰다. 지난해 연주회 횟수는 121회로 2004년의 2배, 관람객 수는 16만5589명으로 8배나 늘어났다.

교향악단의 인기를 보여주는 유료 관객 비중도 2004년 34%에서 지난해 64%로 크게 높아졌다. 경영 실적은 더 좋아졌다. 지난해 총 수입이 33억원으로 법인화 전의 1억4000만원에 비해 무려 23배나 급증했다. 이 가운데 순수 기업 후원금 9억원을 뺀 관람권 판매액만 24억원(단체구매 포함)에 달한다. 서울시향의 올해 연주회 횟수는 122회를 넘어설 전망이다. 지난 3월 예술의 전당이 조사한 교향악단 평가에서 서울시향은 국내 최고로 꼽히던 KBS교향악단을 누르고 전국 20개 오케스트라 중 1위를 차지했다.

서울시의 산하 단체로 나름대로 '한계'를 가진 서울시향이 3년여 만에 이 같은 성과를 낸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연주와 경영을 분리해 '투톱 체제'를 도입한 것이 꼽힌다. 재단법인 출범 직후인 2005년 6월부터 만3년간 대표를 맡은 이팔성씨(현 우리금융지주 회장)가 기업 경영 방식을 도입해 경영의 틀을 잡았고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지휘자 정명훈씨가 그 내용을 채웠다. 경영자와 예술감독이 서로의 영역을 절대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운영 방침을 긴밀하게 협의해 나간 것.단원과 직원들 사이에서도 이 둘의 역할은 자연스럽게 나뉘어졌다.

관객의 입맛에 맞는 맞춤형 공연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등 유연한 고객 관리를 한 것도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일반 공연에서 미리 잡힌 연주 프로그램을 바꾸는 경우는 드물지만 서울시향은 고객의 요구가 있을 때면 공연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프로그램을 조정한다. 또 공연 뒤에는 반드시 마케팅 담당자들과 회의를 가져 어떤 부분이 부족했는지 평가하는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오는 10월 공연에 당초 없던 마림바(실로폰의 일종) 연주를 갑자기 넣은 것도 기업 고객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서울시향은 또 엄격한 오디션을 통해 정예 단원을 뽑은 후 혹독하게 훈련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100명의 단원 중 재단법인 출범 전부터 활동한 사람은 42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58명은 해외 유수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던 연주자들이다. 서울시향의 수준이 높아지자 지난해 하반기 9명의 단원을 뽑는 데 920여명이 지원해 102 대 1의 경쟁률을 보이는 등 지원자도 크게 늘고 있다. 오디션 공고를 내고도 지원자 중 일정 수준에 미치는 연주자가 없으면 아예 단원을 뽑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클래식 초보자부터 마니아까지 다양한 관객층을 위한 기획공연 시리즈를 개발한 것도 관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찾아가는 음악회' '마스터피스 시리즈' '베토벤 전곡 연주' '브람스 전곡 연주' '아르스노바' 등 인기를 끄는 기획공연 시리즈만 다섯 가지나 된다.

'찾아가는 음악회'는 초보 관객들을 위한 무료 공연이고 '마스터피스 시리즈' '베토벤 전곡 연주' '브람스 전곡 연주'는 특정 작곡가를 깊이 있게 감상하려는 관객들을 위한 기획이다. 낯선 현대 음악만을 다루는 '아르스노바'는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사례로 서울시향을 해외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세계적 연주자를 초청해 취약한 부분을 보완한 것도 서울시향의 연주 기량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스베틀린 루세브 라디오 프랑스 오케스트라 악장,플로리스 민데르스 로테르담 필하모닉 첼로 수석,존 브루스예 시카고 심포니 클라리넷 부수석, 루이지 피오바노 산타체칠리아 오케스트라 첼로 수석 등을 객원으로 초청해 오케스트라 연주의 균형을 맞췄다.

서울시향은 이처럼 발전하고 있지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우선 정명훈 이후 음악 감독을 누구로 할 것인지가 문제다. 정씨가 지휘봉을 잡을 때와 안 잡을 때의 연주가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서울시향 고유의 색깔을 만드는 것도 숙제다. 베를린필은 정갈한 음색과 정통적인 곡 해석으로, 런던심포니는 팔색조처럼 곡에 따라 연주 색깔을 다양하게 표현한다는 점이 특징이지만 서울시향은 아직 이렇다 할 색깔이 없다.

한 음악평론가는 "정명훈 예술감독을 대신할 사람을 찾기 위해 만든 부지휘자 제도가 유명무실해진 감이 있다"며 "오케스트라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5~10년이 걸린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제 재단법인으로 3년이 지나간 서울시향도 재정비할 시기"라고 말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