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사지마비가 찾아와 휠체어를 타야 했던 이모씨(70)는 중풍인 줄 알고 유명 병원을 전전했지만 별 차도를 보지 못했다. 한 대학병원 신경과에서 뇌줄중이 아닌 목 부위 척추(경추) 신경에 이상이 있는 것 같다고 판명해줘 가까스로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국제척추센터에 갈 수 있었다.

이씨는 퇴행성 변화에 의해 경추 내의 척수관이 좁아져 목의 척수신경이 압박당하는 '경추증성 척수증'으로 진단됐다. 이 질환은 사지의 일부가 저리는 목디스크와는 달리 전체가 저리고 보행장애가 오는 게 특징이다. 혼자서 단추를 끼울 수 없을 정도로 손놀림이 부자연스럽고 걷는 자세가 불안해 뇌졸중으로 오인하기 쉽다. 그렇지만 뇌에는 이상이 없어 인지기능은 정상에 가깝고 조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증상이 현저히 개선될 수 있다. 이씨는 척추센터에서 목뼈 뒤에 돌출된 극돌기를 0.1㎜의 실톱으로 세로 방향으로 절개한 뒤 그 사이에 쐐기를 박듯 인공뼈를 삽입해 경추 내 척수신경에 미치는 압력을 줄이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후 2주 만에 제발로 병원 문을 걸어나갈 수 있었다.

김석우 국제척추센터 정형외과 교수는 고난도 경추 수술의 대가로 꼽힌다. 수술의 원리와 효과는 명확하지만 조금만 잘못 건드려도 신경이 손상되고 생명이 위태로운 수술과정 때문에 기피하는 이 분야에서 남다른 기록을 세우고 있다. 경추증성 척수증 수술만 100건이 넘었다. 2006년 5월에는 경추 척수증과 목 디스크가 동반된 환자에게 국내 처음으로 척수증 수술과 경추 인공디스크 치환술을 접목한 수술을 실시해 환자가 수술 후에도 자유자재로 목을 돌릴 수 있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성과에 힘입어 지난해 10월에는 미국 볼티모어에서 개최된 국제척추학회에서 수술 시연까지 했다. 최근에는 뇌성마비로 제대로 걷지 못하는 환자를 대상으로 뇌에서 다리로 이어지는 신경근을 일부 절제해 하지신경근 과잉으로 인한 보행장애를 개선하는 '선택적 후궁신경근 절제술'에 도전하고 있다.

김 교수는 "영국에서는 경추마비 환자의 23.6%가 경추증성 척수증일 정도인데 국내에서는 의사들에게조차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다"며 "앞으로 이 분야를 개척해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하겠다"고 말했다.

정종호 기자 rum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