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11일 교착 상태에 빠진 남북 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한 전향적 입장을 내놨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회 개원 연설에서 남북 간 전면적인 대화를 제의한 것이다. 과거 남북 간에 합의된 7ㆍ4공동성명,남북기본합의서,비핵화 공동선언,6ㆍ15공동선언,10ㆍ4정상선언을 어떻게 이행해 나갈 것인지에 관해 진지하게 협의할 용의가 있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가 관건이지만,이날 금강산에서 남측 관광객이 피격당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대화 제의가 빛을 바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북,대화의 장으로=청와대는 이 대통령이 연설에서 다른 합의 사항들과 함께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각각 이뤄진 6ㆍ15공동선언,10ㆍ4정상선언을 넣은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비록 다른 합의 사항들과 함께 거론하긴 했지만 이 대통령이 6ㆍ15,10ㆍ4 선언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월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6ㆍ15,10ㆍ4 선언을 언급하지 않은 채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만을 강조하는 등 두 선언에 대해 등한시하는 태도를 취해 왔다. 이 대통령은 남북기본합의서가 한반도 비핵화를 포함해 남북교류,경제 협력 등 중요한 내용을 다 포함하고 있는 일종의 '바이블'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남북기본합의서만 제대로 이행해도 남북 관계에 큰 진전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하지만 북한은 이 대통령에 대해 6ㆍ15,10ㆍ4 선언에 대한 인정과 즉각적인 이행을 요구하며 대화를 중단하는 등 강력 반발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결국 기존의 입장에서 한 발 물러선 것은 두 선언을 고리로 북한에 대화의 장으로 나오게 하는 명분을 주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남북관계의 특수한 현실을 인정하는 속에서 대화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각계의 의견을 수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6ㆍ15와 8ㆍ15 사이에서 남북관계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면 경색이 장기화할 수 있는데 6자회담 재개를 즈음해 정부 입장을 새로이 정리하고 대화를 촉구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북측의 '통미봉남(남한을 배제하고 미국과 대화한다는 것)'정책에 구실을 줘선 한반도 문제에 계속 소외될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획기적 진전엔 미흡=정부는 '전면적 대화'를 실현하기 위한 행보에 나설 예정이다. 이 대통령이 대북 식량지원 의사를 재차 밝히고 이산가족과 납북자 문제의 해결 필요성을 언급한 만큼 실무 당국이 우선 인도적 현안들을 중심으로 대화 복원에 나설 것으로 점쳐진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이날 연설은 6ㆍ15와 10ㆍ4 선언의 실천을 약속한 게 아니라 단지 이행을 위한 대화를 하자는 수준에 그쳐 획기적이라고 하기엔 여전히 미흡하다. 따라서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기엔 동력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남측 관광객의 피격은 남북 관계를 경색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 사태의 발생 및 처리 과정에서 남북 간 책임 문제를 놓고 신경전이 벌어질 공산이 크다. 이 대통령의 대화 명분을 약화시킬 발목이 될 수 있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