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철이 다가오고 있다. 고온에 비가 오지 않는 마른 장마 탓에 무더위가 일찍 찾아온 듯하다. 예년 같으면 해외 휴양지로 피서를 떠나는 인파가 북적일 텐데 올해는 고유가 탓으로 해외 피서객의 숫자가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만약 호주머니 사정도 고려하고 바쁜 일정 속에서 휴가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면 차라리 도심에 머무르면서 뮤지컬을 관람해보는 것은 어떨까?

세대를 막론하고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는 '캣츠'를 꼽을 수 있다. 1년에 한 번 있는 젤리클 축제에 모인 다양한 고양이들이 저마다의 사연을 펼쳐 놓는다는 단순한 설정이지만 절도 있는 춤과 익숙한 노래가 매력이다. 1981년 런던에서 초연한 이래 27년째 전 세계에서 공연하고 있고 국내에서도 몇 차례 소개한 적이 있어 작품에 대해 이미 많은 정보가 공개돼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몇 가지 사실이 있다.

우선 '캣츠'의 노랫말 원작자인 시인 T S 엘리엇은 많은 이들이 영국인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미국인이다. 미국 미주리 태생인 그는 보스턴 하버드대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스물다섯 살 때 런던 옥스퍼드대에 진학해 영국에서 많은 활동을 했다. 그는 미국인이었지만 ≪황무지≫를 비롯한 많은 걸작들을 발표하며 영문학의 본고장인 영국 문학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캣츠'의 가사는 그가 사망한 후에 '지혜로운 고양이의 지침서'에 수록된 여러 시구를 토대로 1981년 영국에서 먼저 뮤지컬로 만들어진 것이다. 두 번째로 '캣츠'의 대표곡 '메모리'는 남녀의 아름다운 사랑을 추억하는 사랑의 발라드 곡이라고 짐작하는 관객이 많지만 사실은 엘리엇이 남자에게 바치는 시를 기초로 만들어졌다. 엘리엇은 파리 소르본대학 유학시 동료 하숙생이었던 프랑스인 의대생 장 베르드날과 특별한 우정을 쌓았는데 그가 1차대전 중 프랑스 군에 입대해 전사하자 추모 시집 《프루프록과 그 외의 관찰》을 발간했다. '캣츠'의 연출가 트레버 넌은 여기에 수록된 '전주곡'과 '바람부는 밤의 랩소디'라는 시를 재가공해 현재의 '메모리' 가사를 직접 완성했다.

세 번째로 열정적으로 '메모리'를 부르는 여주인공인 그리자벨라의 이름이 쇠락한 존재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아한 어감에도 불구하고 그리자벨라는 영어의 잿빛(grizzle)과 불어의 아름다운 여인(Belle)을 의도적으로 합성한 이름이다. 이는 한때는 화려했지만 현재는 남루하고 덧없는 인생을 살면서 여전히 새로운 희망에 대한 끈을 놓지 않는 강인한 여주인공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들을 알고 '캣츠'를 차분하게 감상하면 더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조용신 공연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