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자들이 대를 넘기지 못하고 수명이 점점 짧아지고, 갑부임에도 실제의 삶이 불행하고, 심지어 남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이유를 이 단순한 메커니즘에서 찾을 수 있다.
지금껏, 한국 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내 놓으라는 부자들을 숱하게 만나온 결과 만들어진 노하우를 발견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부자로 살 수 있는 방법 세 가지.
첫째는 조상의 음덕이 있어야 하고, 둘째는 미련하고 단순해야 하며, 셋째는 작은 인연도 큰 인연으로 만들 줄 알아야 한다는 것.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1위로 랭크된 '조상의 음덕'이다.
내 고향이 전주인지라, 전라도 지역의 세상사에 밝으셨던 할머니께서는 종종 이런 얘기를 들려주시곤 했다.
"옛날에 정읍과 부안의 중간쯤 되는 곳에 오백 석 부자가 살고 있었단다. 전라도 부자치고는 그리 큰 부자는 아닌 게야. 그런데 그 부자 양반은 마음씀씀이가 참 좋아 그 동네는 밥 굶는 이가 없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그 부자 양반이 일생을 걸고 스스로 약조를 하신 게 있었어."
그 약조는 다름 아닌 '동네 사람이 죽으면 반드시 관 한 짝과 상목 한 필을 부의로 보낸다'는 것이었다. 인근에 살던 주민들이 가난으로 장례 치르는 일이 어려워지자 이렇듯 선심을 베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런데 점점 범위가 넓어져 상뿐만 아니라,출산하는 집에도 상목 한 필씩을 내어주기 시작했고,이 소문이 퍼지자 여기저기에서 출산과 상을 알리는 전갈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옛날에 '가난은 임금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 처음에는 작은 규모로 시작한 이 일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결국엔 오백석 규모의 재산도 다 털리고 가세는 급격히 기울고야 말았다. 그럼에도 그 분은 유명을 달리하는 순간까지도 여유를 잃지 않으셨다 하는데….
"내가 너네들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 저금을 많이 해두었기 때문에 분명 나보다 더 큰 부자가 될 것이다. 앞으로 너네들이 하는 사업은 절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것이니 걱정 마라. 그러나, 단 하나 관청을 통해 이익을 보면 크게 해를 당할 터이니 절대 어떤 사업을 하건 관청에 얼굴 나타내는 일은 없도록 하여라."
남은 유산 한 푼 없는 상황에서의 아버지의 유언은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무슨 돈이 있어 사업을 일으킬 것이며,관에 잘 보여야 가능했던 사업을 어찌 관의 협조 없이 하라는 말씀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아버지 공덕이 전설이 되어가던 무렵, 아들은 6ㆍ25 당시 부산에서 식품 사업을 일으켜 식품업계의 거목으로 성장한다. 식품업계를 석권한 이 식품업계의 아성을 국내 굴지의 기업이 빼앗아 보려 했으나 실패, 결국 그 기업 창업주의 한이 되었을 정도. 그러나 지금은 그 기업과 사돈을 맺어 또 다른 곳에서의 '화합'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버지의 유언을 철저히 따르는 통에 얼굴 없는 사나이가 된 그는 먹는장사를 한 까닭에 숱한 피해를 봤음에도 정권의 오고감과도 아무 상관없이 한결같은 규모를 유지할 수 있었고,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까닭에 이리저리 신문에 입방아 찧을 일도 없었다 한다. 하긴 나 역시도 최근에야 과거 할머니께 들었던 전설의 오백 석 부자의 아들이 바로 '그'였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돈에 한 맺힌 양반들이 참 많다. 그래서인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모으고, 또 그 이상으로 돈을 쓴다. 이로써 그분들은 돈에 맺힌 한을 푸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돈에 '한'을 품어 화폐수집에 성공한 분들을 '부자'로 보지 않는다. '개천에서 용은 날 수 있지만, 승천은 할 수 없듯이' 조상의 음덕이 없으면 큰 부자는 낳기 힘들다. 관 한 짝과 상목 한 필이 낳은 한국형 갑부. 나는 그 같은 사람을 진정한 '부자'라고 말한다.
나눔을 당연한 일로 여기는 마음이 바로 자손에 대한 음덕이다. 자손은 이를 보고 배우고 그렇게 흘러 흘러 부가 오래토록 전해져 유지되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화폐를 아낌없이 나누어야 부가 된다는 부의 메커니즘은 어떤 최신의 경제학에도 찾기 힘들다. 오히려 나눔이 사회적 존경과 명예를 습득하기 위한 일개의 기업 이미지 관리 전술이나 치장으로 전락한 게 작금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사람들은 여전히 복을 쌓기보다 화폐를 수집하는데 열중한다. 나눔의 메커니즘을 지나쳐버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복잡한 정보와 지식의 시대에 핵심이 너무 간단하기 때문이며 눈앞의 장부에 쓰는 치밀한 계산에 어긋나기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리는 간단하다. 갑부의 자식에게는 외국의 유명 경영학 학위보다 조상들의 옛날이야기가 한 토막이 더 절실하다. 돈은 당장 물려줄 수 있어도 부와 행복은 물려줄 수 없다. 미래는 현재의 열매다. (hooam.com)
☞ 차길진 칼럼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