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택지에선 분양가 상한제를 완화해 주겠다는 정부 방침이 정작 건설업체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건설사들은 땅값을 계산할 때 감정가가 아닌 실제 매입가를 반영해 줘도 실익이 없다는 반응이다. 완화 조치로 분양가가 올라가면 원가구조에 숨통이 트일 수 있지만 지금처럼 분양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선 '미분양'이란 역효과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규제완화가 먹히지 않는 '분양가 상한제 완화의 역설'인 셈이다.
분양가상한제 완화…건설업체는 '시큰둥
◆규제완화 이후로 분양 연기 안해

국토해양부는 분양가 상한제 보완을 포함한 규제완화를 위해 오는 9월 열릴 정기국회 때 관련 법령을 개정한다는 방침이다. 규제완화에 대한 국회 내 이견이 있을 경우 10월로 법령 개정이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땅값을 실제 매입가로 인정해 달라고 요구해온 건설업체들로선 8~10월에 잡혀 있던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 물량을 10월 이후로 연기하는 게 상식적인 수순이다. 작년 12월부터 민간택지에 분양가 상한제가 확대 시행된다고 예고됐을 때도 건설사들은 상한제를 피하기 위해 미리 11월 말까지 분양승인을 대거 신청했었다.

그러나 이번엔 사정이 다르다. 오는 8~10월 분양(민간택지 상한제 단지)을 앞두고 있는 건설업체들은 당초 계획대로 분양을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오는 10월 천안 두정동에서 분양을 앞둔 성우종합건설의 한 임원은 "분양가는 어차피 주변 아파트 시세를 보고 결정하기 때문에 택지비에 실제 매입가를 반영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같은 달 김포 고촌에서 3600여가구를 공급할 신동아건설 관계자도 "분양시장이 침체돼 있어 주변 아파트 시세와 비슷한 가격대로 분양가를 결정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는 8월 고양시 행신동에서 타운하우스(102가구)를 공급하는 중흥건설 관계자는 "땅 매입가를 반영해 분양가를 올리면 시장에서 수요자들이 기대하는 가격대를 넘게 된다"며 "금리가 계속 올라가고 있어 사업을 빨리 진행하는 게 더 급하다"고 설명했다. 또 "지금 배고픈 사람에게는 기다렸다가 주는 밥보다 당장의 빵이 낫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분양가 오히려 떨어질 수도


건설업체들이 이처럼 분양가 상한제 완화 시책에 시큰둥한 것은 △지난 8일 단품슬라이딩제 도입에 따른 기본형 건축비 인상과 △매입가 반영에 따른 분양가 하락 가능성 때문이다. 우남건설 관계자는 "오는 9월1일에는 기본형 건축비가 한 번 더 조정될 예정이어서 막연히 분양을 미루기보다 어느 정도 인상된 건축비를 적용해 분양하는 게 낫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감정가로 땅값을 계산할 때는 시행사의 어려운 입장을 감정업체가 이해하고 감정가를 산정해 준 측면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예를 들어 시행사가 지주들로부터 땅을 사들일 때 지주들의 양도소득세를 대납해 주는 경우가 있는데 감정가로 산정할 때는 이 부분을 감안해 주는 관행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매입가로 계산하게 되면 양도세 대납분은 매입가에 포함시킬 수 없어 오히려 분양가가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건설사로선 큰 틀의 상한제를 폐지하거나 수요 진작을 위해 대출.세제규제를 완화해 주는 게 더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장규호 기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