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가족부(이하 복지부) 장관으로 전재희 의원이 내정되면서 한 부처의 장ㆍ차관이 다 여성이라는 게 얘깃거리다. 15개 정부 부처 중 장ㆍ차관이 모두 남성인 13곳은 문제 삼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래봤자 장ㆍ차관급 114명에 여성은 3명.여성부 장관과 복지부 장ㆍ차관이 전부다. 청와대 수석비서관엔 1명도 없다.

양성평등적이고 투명하며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위해 필요하다는 30%는 고사하고 3%도 안 된다. 이러니 유엔개발계획(UNDP)에서 여성의 정치ㆍ경제 활동과 정책결정 과정 참여도 등으로 매기는 여성권한척도가 늘 하위권일 수밖에.사정이 이런데 딱 한 곳의 장ㆍ차관이 여자라고 여기저기서 '여인 천하' 운운한다.

여성 장ㆍ차관이 적은 이유로는 몇 가지가 꼽힌다. '마땅한 사람이 없다''조직장악력이 부족하다''위기 대응력이 약하다''검증 과정에서 문제 됐다' 등.그럴 수 있다. 여성의 경우 하위직에 비해 중간층은 적고 상위직은 찾기 힘들다. 평소 고위직 진출에 대한 대비가 허술해 검증 도중 잘 걸릴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장관이 둘이래봤자 여성부를 제외하면 한 자리 배정받은 거나 다름없다. 물론 각료회의에 단 한 사람이 앉아 있는 기이한 꼴은 면하게 됐다. 어느 조직에서건 여성이 전혀 없을 때와 한 명이라도 있을 때의 차이는 크다. 과거 어느 대학에서 여자 교수를 안 뽑은 진짜 이유로 밝혀진 대목을 보면 짐작 가능하다.

'여름에 러닝셔츠 바람으로 있기 어렵다''회의석상은 물론 평소에도 말과 행동에 신경을 써야 한다''회식 장소를 선택할 때도 눈치 보인다'.결국 여성이 있으면 옷차림도 신경쓰고,성적 농담도 조심하고,술집에 가는 것도 자제하고,자의든 타의든 매사 양성평등적 시각을 갖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대학에서만 그러하랴.정부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혼자 있으면 남성들 스스로의 조심에 기대야 한다. 의견 개진도 자유롭기 힘들다. 뭔가 발의하고 주장하자면 동조자가 있어야 하는데 혼자서는 힘을 받기 어렵다. 자칫 외면당할까 움츠러들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투명인간처럼 여겨질지 모른다.

둘이 되면 목소리는 낼 수 있다. 그러나 힘을 발휘하고,주의를 집중시키고,의견을 관철시키자면 10%는 돼야 한다. 남성의 사고가 수직적ㆍ경직적ㆍ경험 위주라면 여성은 수평적ㆍ유동적ㆍ가능성 위주다. 따라서 여성이 늘어나면 남성끼리의 일방통행적이고 선험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논의를 펼칠 수 있다.

지금은 어쩌면 비상사태라 해도 과언이 아닌 시국이다. 한정된 경험을 바탕으로 하던 대로 해선 돌파구를 찾기 어렵다. 완전히 다른 시각과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여성 장ㆍ차관이 늘어나야 하는 이유다. 여성 장ㆍ차관과 여성 수석비서관 등이 증가하면 '도무지 민심을 못 읽는다''소통 불능이다' 같은 비난에서 벗어날 대안을 강구하게 될지 모른다.

'통솔력이 문제다,인재가 없다'는 식은 곤란하다. 통솔력은 대부분 지지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기회를 주고,힘을 실어주고,특유의 장점이 발휘되도록 밀어주면 얼마든지 새로운 리더를 찾아낼 수 있다.

또 여성 장ㆍ차관이 많아지면 공직사회와 기업의 여성 고위직이 늘어나는 건 물론 여성들에게 참고 승진하는 법을 터득하게 할 수 있다. 인재는 비전이 만들기 때문이다. 비전 제시 없이 여성인력 활용이 국가의 미래라고 아무리 얘기해봤자 소용 없다. 비전이 있으면 결혼과 출산을 이유로 쉽게 그만두지 않고,조직의 승부를 피해 혼자 할 수 있는 일만 하려 들지도 않을 것이다. 남성들 역시 장관 자리를 여성에게 내준다고 억울해하는 데서 놓여나야 한다. 그래야 사랑하는 딸들의 미래를 창출할 수 있다.

박성희 수석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