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독도영유권 명기' 도발] 日 화해 제스처 속 뒤통수 치기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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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은 구한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둬 세력이 강화된 일본이 6세기 이후 한국 영토였던 독도를 1904년 일방적으로 영토로 편입하면서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은 시작됐다.
1945년 해방과 함께 독도는 일본의 행정구역에서 분리됐지만 일본에서는 이를 '다케시마'라고 칭하며 계속해서 자신들의 영토임을 주장해 왔다. 1500년 이상 한국의 영토였던 섬에 대해 일본이 최근 100년간 세계 정세의 변화를 틈타 자국 영토에 편입하려 하고 있는 셈이다.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은 '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 선언'을 발표하여 독도에 대한 주권 행사를 국내외적으로 천명했다.
아울러 우리 국회는 1954년 7월 독도를 일본의 침공으로부터 보존할 것을 결의했고 이후 의용수비대로부터 업무를 인계받은 울릉경찰서 소속 독도경비대가 독도 수호를 전담하게 됐다.
하지만 1965년 '한.일 어업협정'으로 인해 일본 어선들은 어업의 자유를 한국 측 연안에서 보장받게 됐고 일본은 재차 '200해리 경제수역' 선포를 통해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에 편입하려는 주장을 펼쳤다.
1998년 '신한.일 어업협정' 때 독도는 한.일 중간 수역에 포함됨으로써 일본에 독도 영유권 주장의 빌미를 제공했고 2005년 시마네현 의회는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을 상정,독도가 자신들의 행정구역에 있음을 주장했다.
일본 중학교 교과서들 중 일부는 이미 1990년대 이후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고 밝히고 있으며 올 들어서는 일본이 '교과서 학습지도 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을 명기하기로 하는 등 일본의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은 계속되고 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
러.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둬 세력이 강화된 일본이 6세기 이후 한국 영토였던 독도를 1904년 일방적으로 영토로 편입하면서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은 시작됐다.
1945년 해방과 함께 독도는 일본의 행정구역에서 분리됐지만 일본에서는 이를 '다케시마'라고 칭하며 계속해서 자신들의 영토임을 주장해 왔다. 1500년 이상 한국의 영토였던 섬에 대해 일본이 최근 100년간 세계 정세의 변화를 틈타 자국 영토에 편입하려 하고 있는 셈이다.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은 '해양의 주권에 대한 대통령 선언'을 발표하여 독도에 대한 주권 행사를 국내외적으로 천명했다.
아울러 우리 국회는 1954년 7월 독도를 일본의 침공으로부터 보존할 것을 결의했고 이후 의용수비대로부터 업무를 인계받은 울릉경찰서 소속 독도경비대가 독도 수호를 전담하게 됐다.
하지만 1965년 '한.일 어업협정'으로 인해 일본 어선들은 어업의 자유를 한국 측 연안에서 보장받게 됐고 일본은 재차 '200해리 경제수역' 선포를 통해 독도를 자신들의 영토에 편입하려는 주장을 펼쳤다.
1998년 '신한.일 어업협정' 때 독도는 한.일 중간 수역에 포함됨으로써 일본에 독도 영유권 주장의 빌미를 제공했고 2005년 시마네현 의회는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을 상정,독도가 자신들의 행정구역에 있음을 주장했다.
일본 중학교 교과서들 중 일부는 이미 1990년대 이후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고 밝히고 있으며 올 들어서는 일본이 '교과서 학습지도 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을 명기하기로 하는 등 일본의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은 계속되고 있다.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