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엔 '저승사자',어린이들에겐 '기부 천사'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혼이 이끄는 영국계 헤지펀드 TCI(더 칠드런스 인베스트먼트)가 글로벌 신용경색 여파로 6월 한 달 새 10억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입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5일 보도했다.

TCI 운용자산(100억달러)의 10%에 달하는 규모다. 이 여파로 TCI는 일본 최대 전력도매회사 J파워 지분 확대를 포기,기간시설에 대한 외국 자본의 출자제한을 둘러싼 일본 내 논란도 일단락될 전망이다.

2003년 설립 이후 연 평균 40%에 달하는 수익률을 기록하며 유럽에서 가장 성공한 헤지펀드로 꼽혀온 TCI도 글로벌 증시 추락을 피해가지 못한 채 올 상반기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위기에 빠진 유럽 헤지펀드 업계의 현 주소를 대변하는 대목이다.

TCI가 J파워 지분인수 추진과 관련한 일본 정부의 명령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행정소송 청구를 포기한 것도 이 같은 실적 악화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더 이상 일본 정부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이 펀드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와 TCI 간 공방전은 지난해 11월 TCI가 J파워 지분을 9.9%에서 20%까지 확대하겠다며 사전신고서를 내면서 촉발됐다. 일본 정부는 지난 5월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정부의 원자력 정책에 영향을 주고,공공질서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TCI에 주식취득 중지 명령을 내렸다. TCI는 이에 대해 "건전한 주주 민주주의에 반하는 처사"라며 영국 정부와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에 제재를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펀드 실적이 악화되면서 실리를 위해 결국 꼬리를 내렸다는 평가다. 시장에선 TCI가 J파워 지분을 모두 매각하고 발을 뺄 것으로 보고 있다.

TCI는 미국 최대 화물철도회사인 CSX의 경영권 장악도 시도하고 있어 실적 악화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TCI의 창립자 크리스토퍼 혼은 목적 달성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공격적인 행보로 기업 입장에선 '기피대상 1호'로 통하지만 자선단체인 어린이투자펀드재단(CIFF)에 한 해 2억3000만파운드(약 4600억원)를 기부하는 등 선행을 베풀어 '영국의 워런 버핏'이란 평가도 동시에 받고 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