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경영 업그레이드'] 규제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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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경제위기 직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독일에서 온 글로벌기업 경영자들과 간담회를 가진 적이 있었다. 규제는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던 재계 담당기자들을 당황스럽게 만든 자리였다. 그때 기자들의 질문은 이랬다. "한국의 노사관계 제도가 지나치게 규제 중심적이어서 기업 활동하기가 어렵지 않느냐? 규제완화가 절실한 것 아닌가?" 당연히 긍정적인 답변을 들을 줄 알았지만 독일 경영자들의 대답은 전혀 달랐다. "우리는 한국에 10여년 전부터 들어와 노사관계 제도에 이제 적응했다. 뒤늦게 들어오는 미국 등 다른 나라 업체들을 위해 규제를 풀어준다는 게 말이 되느냐?"
그렇다. 규제도 누군가에게는 부담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좋은 것이다. 이해집단끼리 보는 눈이 다를 수밖에 없다. 새 정부마다 규제개혁을 외치지만 실제 성과가 적었던 데는 이 같은 이유도 있다.
문제는 정부가 기업을 규제하는 철학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해 나라 전체의 경쟁력이 올라가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을 잡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우리의 기업규제 방향은 크게 보아 단속이냐 보호냐로 나눠볼 수 있다. 단속과 보호는 반대되는 의미같지만 사실은 같은 궤도상에 있다. 대기업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 '단속'을 한다면 그 결과는 중소기업과 영세기업을 위한 '보호'가 될 것이다. 이 경우 어디까지가 '단속'의 대상이고 어디서부터가 '보호'의 대상일까 하는 형평의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대기업들은 중소기업에 비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불평을 터뜨리고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대기업들을 더 옭아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와중에 규제는 사라지지 않고 기업하기 가장 어려운 나라라는 오명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
기업을 단속하는 이런 방식의 규제가 과연 지금도 유효할까. 기술발달이 빠르고 시장상황이 급변하는 현실에서 통할 수 있을까.
최근 분란이 생기고 있는 휴대폰 번호이동 문제를 보자.정부가 기존 모든 휴대전화 번호를 010으로 바꾸는 번호통합정책을 추진하면서 곳곳에서 파열음이 생기고 있다. 소비자들은 010으로 바꾸고 그것도 영상통화가 가능한 3G(3세대)기기를 구입해야 한다. 불만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 경우에도 단속과 보호 중심의 규제로 볼 수 있는데 휴대폰3사 가운데 SK텔레콤의 시장지배력이 '지나치게' 강화됐다고 규제당국이 판단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휴대폰업체들이 이 규제 아래서 최대한의 성과를 거두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고객들에게 돌아가게 돼 있다.
이미 기술발달이나 시장변화는 정부의 통제 범위를 넘어서 있다. 이런 현실을 인정한다면 규제의 철학도 과감하게 시장중심으로 바꾸는 것이 어떨까.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규제의 목표로 해야 한다는 얘기다. 유럽식 모델인 셈인데,규제를 기업 대 기업의 문제로 보지 않고,기업 대 소비자의 관계로 보고 있다. 이런 규제 아래서는 기업 하기가 너무 어렵지만,시장과 소비자에게 맞추다보니 경쟁력은 오히려 향상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곳곳에서 암초를 만나 새 정부가 제대로 일을 못하고 있지만 방통융합 등 여러가지 현안을 생각할 때 규제의 철학이라도 제대로 다듬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정부 요인이 플러스(+)가 아니라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악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말이다.
권영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
그렇다. 규제도 누군가에게는 부담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좋은 것이다. 이해집단끼리 보는 눈이 다를 수밖에 없다. 새 정부마다 규제개혁을 외치지만 실제 성과가 적었던 데는 이 같은 이유도 있다.
문제는 정부가 기업을 규제하는 철학이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해 나라 전체의 경쟁력이 올라가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을 잡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우리의 기업규제 방향은 크게 보아 단속이냐 보호냐로 나눠볼 수 있다. 단속과 보호는 반대되는 의미같지만 사실은 같은 궤도상에 있다. 대기업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 '단속'을 한다면 그 결과는 중소기업과 영세기업을 위한 '보호'가 될 것이다. 이 경우 어디까지가 '단속'의 대상이고 어디서부터가 '보호'의 대상일까 하는 형평의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대기업들은 중소기업에 비해 역차별을 당하고 있다고 불평을 터뜨리고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대기업들을 더 옭아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와중에 규제는 사라지지 않고 기업하기 가장 어려운 나라라는 오명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
기업을 단속하는 이런 방식의 규제가 과연 지금도 유효할까. 기술발달이 빠르고 시장상황이 급변하는 현실에서 통할 수 있을까.
최근 분란이 생기고 있는 휴대폰 번호이동 문제를 보자.정부가 기존 모든 휴대전화 번호를 010으로 바꾸는 번호통합정책을 추진하면서 곳곳에서 파열음이 생기고 있다. 소비자들은 010으로 바꾸고 그것도 영상통화가 가능한 3G(3세대)기기를 구입해야 한다. 불만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이 경우에도 단속과 보호 중심의 규제로 볼 수 있는데 휴대폰3사 가운데 SK텔레콤의 시장지배력이 '지나치게' 강화됐다고 규제당국이 판단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휴대폰업체들이 이 규제 아래서 최대한의 성과를 거두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피해는 고스란히 고객들에게 돌아가게 돼 있다.
이미 기술발달이나 시장변화는 정부의 통제 범위를 넘어서 있다. 이런 현실을 인정한다면 규제의 철학도 과감하게 시장중심으로 바꾸는 것이 어떨까. 소비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을 규제의 목표로 해야 한다는 얘기다. 유럽식 모델인 셈인데,규제를 기업 대 기업의 문제로 보지 않고,기업 대 소비자의 관계로 보고 있다. 이런 규제 아래서는 기업 하기가 너무 어렵지만,시장과 소비자에게 맞추다보니 경쟁력은 오히려 향상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곳곳에서 암초를 만나 새 정부가 제대로 일을 못하고 있지만 방통융합 등 여러가지 현안을 생각할 때 규제의 철학이라도 제대로 다듬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정부 요인이 플러스(+)가 아니라 마이너스(-)로 작용하는 악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말이다.
권영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