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공능력평가 30위권 중견 건설업체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인 A씨는 이달 말 회사채 만기를 앞두고 최근 한 골프회원권 거래소를 찾았다. 회사가 보유한 20억여원의 골프ㆍ콘도 회원권을 팔아 회사채를 갚는 데 보태기 위해서였다. 회원권거래소 직원은 "건설사들이 왜 회원권을 팔려고 난리냐.건설사들 때문에 회원권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 제발 좀 거둬 달라"고 했다고 A씨는 전했다.

시공능력평가 50위권의 또 다른 주택건설 업체는 지난 5월 말 회사가 갖고 있던 골프회원권을 모두 매각했다. 주주들에게 약속한 배당금 일부를 지급하지 못하는 등 자금난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만기 도래한 5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막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처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골프회원권을 100여개 보유한 한 증권회사도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얼마 전 절반인 50개를 팔아 달라고 거래소 측에 내놓은 상태다.

물가 급등 속 경기 침체가 가시화되면서 건설사ㆍ중소기업ㆍ금융회사 등이 골프회원권을 쏟아내 회원권 값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특히 회원권 값 상승을 이끌었던 10억원대의 고가 회원권까지 급락세를 보이면서 회원권 시장이 장기 하락세로 들어선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주로 법인들이 보유한 고가 회원권은 매물이 거의 없었으나 최근에는 골프장별로 2~3개씩 20여개가 시장에 나와 있다고 회원권거래소들은 밝혔다. 가격도 2개월여 만에 적게는 8000만원,많게는 2억원 넘게 떨어졌다. 이들 고가 회원권이 하락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렉스필드CC는 5월 초 13억4500만원이었으나 16일 현재 2억2500만원 하락한 11억2000만원에 시세를 형성하고 있다. 이스트밸리CC는 16억원에서 1억6000만원 떨어진 14억4000만원,가평베네스트GC는 1억1000만원 빠진 18억2000만원,화산CC는 8000만원 하락한 11억5000만원에 매물이 나와 있다. 법인 회원이 별로 없는 남부CC는 20억원의 시세를 유지하고 있으나 20억원에 내놓은 매물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있다.

시장관계자들은 앞으로 골프회원권이 더 내려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경기가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다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들이 추가로 매물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동아회원권거래소 한창국 팀장은 "주로 법인들이 선호하는 고가 회원권은 그동안 사고 싶어도 매물이 없어 가격이 오르기만 했으나 최근에는 매물이 쌓여도 사려는 곳이 없다"고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에이스회원권거래소 송용권 팀장은 "매도자는 현 가격대를 지키려고 애쓰고 있으나 매수세가 실종된 만큼 경기 호전 신호가 없으면 급락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한은구/임도원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