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피가 말라요. "

[벼랑에 선 건설사] (1) '괴담에 떤다' ‥ "김사장, 자네 회사는 루머에 안시달려?"
중견 건설업체 A사의 오너인 B사장.그는 자기 전에 수면제를 먹는다. 회사가 부도설,M&A(인수합병)설,사옥 매각설 등 온갖 루머에 휩싸인 뒤로 불면증에 시달려서다. B사장은 "지난해 말 부도설이 돌아 금리 부담이 커졌는데 최근에 부도 위험이 있다는 루머가 또 다시 돌면서 채권금융기관에 회사 상황을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건설사 사장들을 만나면 너도나도 루머에 시달린 얘기를 한다"고 전했다.

건설사들이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DJ정권 시절인 2000년부터 노무현 정권 말기인 2006년까지 주택경기 호황을 타고 전성기를 누렸던 건설사들. 이젠 '사상 최대의 미분양(공식 13만가구,업계 추산 25만가구) 사태'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이다. 집값 폭등세를 막기 위해 노무현 정부가 쳐놓은 세제.금융.분양가 족쇄에 가위눌려 "외환위기 시절보다 더 어렵다"며 신음하고 있다. 그나마 해외사업과 토목사업 비중이 높은 대형 건설사들은 사정이 낫다. 아파트에 주력하는 주택전문업체들은 자금난에 허덕이며 각종 부도설과 M&A설 등 '괴담'의 표적이 되고 있다.

부도설은 당장 하반기 회사채 만기를 앞둔 건설사들을 중심으로 급속히 퍼지고 있다. C사의 경우 지방에 미분양 아파트가 쌓인데다 이달 초 700억원의 회사채 만기가 돌아와 부도설이 나돌았다. 다행히 거래은행으로부터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받은 700억원으로 회사채를 갚아 위기를 넘겼다.

또 다른 D사. 회사채를 발행하지는 않았지만 지난달 전무급 이상 임원들로부터 일괄사표를 받은 뒤 부도 위기에 직면했다는 소문이 떠돈다. 경기도에 본사를 둔 E사도 최근 6개월 동안 임직원들에게 월급을 제대로 못준 것으로 알려지며 괴담의 주인공이 됐다. 이 회사는 최근 2개월간 하도급업체에 공사대금(기성금)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M&A 소문도 꼬리를 물고 있다. 시공능력평가 100위권 건설사 가운데 증권가 정보지(일명 찌라시)에 M&A 대상으로 떠도는 회사는 현재 10여개사. 이달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는 F사와 G사, 다음 달 돌아오는 H사 등이 단골로 등장한다. 심지어 공개적으로 매각을 추진해온 현대건설 말고도 또 다른 10위 이내 대형 건설사도 매각설이 나돌 정도다. 이 회사는 지방 미분양이 가장 많은데다 지방 상업시설 등 보유 건물을 올 들어서만 장부가 기준으로 5000억원어치나 팔면서 매각설이 확산되고 있다.

"일부 주택전문업체들이 매물로 나왔으나 매수자가 없어 매각이 불발됐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건설사 모 상무)

실제 지방에 본사를 둔 I사의 경우 올초까지 대기업 건설사, 중견 제조업체 등 2개사와 회사 매각을 논의했으나 서로 매각 조건이 맞지 않아 매각협상을 중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루머에 시달리는 건설사들은 초긴축경영에 돌입했다. 한 중견 건설업체의 해외사업 담당 임원 J씨는 이달 말 월급날에 은행계좌로 들어올 월급을 아내가 확인할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프다. 지난달 자신을 비롯한 회사 임원 30여명 모두 자진해서 임금을 깎기로 해 이달부터 월급이 지난달보다 20% 줄어든다. 올 여름 휴가도 자진반납했고 업무용 회사차량은 일찌감치 회수당했다. 또 다른 중견 건설사의 임원은 회사 미분양 아파트 2채를 할당받아 친척들에게 팔고 있다.

임도원/김재후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