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훈 삼화실업 사장은 회사에 합류하기 전 8년 동안 삼성물산(건설부문)에서 회사원 생활을 했다. 고 사장은 한양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ROTC로 군 생활을 마친 후 삼성물산에서 공사현장 관리,경영 관리,협력업체 관리,인사 관리 등의 주요 업무를 담당했다. 고 사장이 과장으로 승진한 2000년 어느 날 어머니가 "아버지 연세도 많고 몸도 안 좋은데 너는 정말 너대로 갈 거냐"며 의중을 물어 왔다. 무뚝뚝한 고 회장이 아내를 통해 아들의 뜻을 넌지시 떠 본 것.
그 때까지 아버지의 공장엔 가 본 적도 없었던 고 사장은 건설업이 자신의 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 왔기 때문에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황했다. 고 사장은 5개월간 고민한 끝에 아버지를 돕기로 결심하고 관리 부장으로 입사했다. 그는 "처음엔 대기업 시스템에 맞춰져 있는 내 습성이 중소기업의 업무 방식에 맞게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면서 "특히 젊은 사람이 자꾸 변화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 직원들의 불만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실제 제관업계는 휴가철에 생산 라인 가동을 전면 중단하고 공장 직원이 한꺼번에 휴가를 가는 것이 관행이었다. 고 사장은 이 같은 비효율을 개선해야겠다는 생각에 휴가 제도부터 뜯어고쳤다. 직원들이 휴가를 분산해 가도록 하고 생산 라인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직원들의 불만이 거셌다. 생산 라인 중간 중간에 한 사람씩 빠지면 연결 작업이 안 돼 생산에 차질을 빚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2년 만에 다시 예전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시행착오를 겪었다.
고 사장은 "직장 생활에서는 내 할 일만 하면 됐으나 이제 나에게 주어진 일이라는 것이 따로 없고 모든 것을 내가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에서는 실수해도 누군가가 보완해 주지만 지금은 내가 잘못하면 회사의 존폐가 위협받을 수 있어 부담감이 크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고 사장이 합류하고 나서 회사에 많은 변화가 왔다. 공장 자동화를 통해 인건비를 줄였고 아산공장 이전도 순조롭게 마쳤다. 아울러 회계 시스템을 정비하고 전사적 자원관리(ERP)도 도입했다. 특히 외국과 제휴한 롤러 제조 기술은 회사의 핵심으로 믿고 맡길 사람이 필요했었는데 동생이 회사에 합류하면서 외국 회사와의 협력에 가속도도 붙었다.
고 사장은 "사장이지만 대기업에 다닐 때보다도 월급이 적다"며 "중소기업의 현실이 그만큼 어렵지만 가업을 잇는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보람은 크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앞으로 롤러 사업 부문을 성장시키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이라며 "지금까지 무조건 저가 롤러만 찾던 인쇄 시장이 비싸더라도 성능이 뛰어난 제품을 찾고 있어 롤러 분야에서 경쟁력이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