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언항 < 건양대 보건복지대학원장 >

나는 우유를 마실 때마다 '고름'이라는 단어가 연상된다. 10여년 전 한 우유회사가 '우리는 고름우유를 팔지 않습니다'라는 광고가 촉발한 고름우유 논쟁의 후유증(?)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16일 MBC 'PD수첩'에 대해 '시청자 사과'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미국산 쇠고기 보도가 오보인 것은 물론 공정성과 객관성을 위배했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집중적이고 일방적인 과잉보도 탓에 앞으로 쇠고기에 대해서도 우유에서와 같은 후유증을 겪는 게 아닐지 걱정이다.

2개월 넘게 계속돼온 촛불시위 뒤에 남은 것은 한우 목축농가나 쇠고기를 재료로 한 음식점을 경영하는 이들의 엄청난 고통이다. 이들의 손해와 고통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매일 촛불시위라는 뉴스를 접해온 국민의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시위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교통이 막히고 시위 현장에서 몽둥이와 진압봉이 난무하고 부상자가 속출한다는 현장 소식을 전해 듣는 것은 보통 짜증스러운 일이 아니다. 출범한 지 5개월 남짓한 정부가 의욕적으로 계획했던 공기업 개혁,경제 살리기 등 산적한 과제의 실천도 물 건너가는 것 아닌가 염려된다.

갈기갈기 분열된 국민의식은 어떻게 봉합할 것인가. 사태가 마무리됐을 때 '도대체 왜 그러한 미몽에 빠졌던가'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어느 사회나 식품 안전문제는 국민적 관심사다. 그러나 국민은 정부를 믿고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안전한 식재료를 사용해 식단을 꾸민다. 미국의 예를 들면,식품의약국(FDA)이나 질병관리본부(CDC)와 같은 정부기관 발표를 신뢰하고,중요한 정보원으로 삼고,행동기준으로 삼는다. 지난 4월 미국 언론에서 버지니아에 사는 22세의 여성이 인간광우병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으나 국민들이 동요하거나 쇠고기의 소비가 줄어들지 않았다(지난 6월 인간광우병이 아닌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그런데 우리나라 국민은 정부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는 것 같다.

'PD수첩'의 보도가 오보였다는 데서도 드러나듯이 과학적으로나 상식적으로나 미국산 쇠고기가 인간광우병을 일으킨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 같은데 사람들은 여전히 시위에 나섰다. '3억명 이상의 미국인이 쇠고기를 먹어도 인간광우병에 걸린 사람은 없다'고 하면 이해할 것 같은데 '그러면 너나 먹어'라고 했다.

이처럼 정부를 믿지 않는 것은 정부가 제공하는 정보와 자료의 질이 불충분한 것도 한 이유이다. 지난 4월 인간 광우병에 관련된 자료를 미국의 CDC나 FDA 등의 홈페이지에서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으나 우리나라 정부기관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거의 없었다. 그러다 보니 개인의 블로그나 카페에서 객관성 없는 불명확한 정보를 서로 퍼나르며 범람하는 사태가 이런 불신을 조장한 것이다.

게다가 사회가 위법한 행동에 대해서도 아주 관대하다. 우리나라가 선진국 모임인 OECD 회원국이지만 우리와 같이 무질서한 나라를 찾아보기 힘들다. 이명박 대통령을 선장으로 해 막 출범한 대한민국호(號)에서 선장을 흔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국내외적으로 어떤 파장을 일으킬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제 '광우병 사태'의 실체가 상당 부분 드러났다. 정부는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위법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 사회질서의 유지가 국가의 기본적인 존립목적이다.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지 않는다면 국민은 누구를 의지하고 살겠는가. 정부는 국민이 세금을 내는 이유를 헤아려야 한다. 그리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국민에게 제시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