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인터뷰] 소설가 이외수씨 "정신적 풍요만 있다면 백수도 돋보여"
작가 이외수씨(62·사진)를 만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그의 작품을 단 한권이라도 읽어봐야 한다는 것.이는 '나쁜 의도'만 없다면 언제든지 방문객들을 환영한다는 의미다. 강원도 오지에 파묻혀 외부와 단절한 채 글만 쓰는 '괴짜 작가'의 모습은 전혀 아니다. 이처럼 누구에게나 열려있기 때문인지 화천군 다목리 상서면 '감성마을'에 있는 그의 집은 첩첩산중인데도 늘 방문객들로 붐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일주일에 200여명에 이른다고 부인 전영자씨는 귀띔했다.

지난 18일 그의 집까지 가는 데는 서울에서 승용차로 3시간여가 걸렸다. 험하기로 소문난 백운계곡을 지나서 꼬불거리는 도로를 따라 40분 정도 들어가서야 '감성마을'이 나타났다. 이씨는 집에서 50m정도 떨어진 곳에 2층 한옥으로 지어진 교육시설 '모월당'에서 20여명의 중학생들에게 강의를 하고 있었다. 강의가 끝나자 이씨는 먼저 와 있던 모 대학 학보사 학생들과 인터뷰를 끝낸 뒤 보자고 정중하게 요청했다. 학생들에게 사인을 해주고,사진까지 찍은 다음에야 그와 마주앉을 수 있었다.

-방문객들에게 대단히 호의적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월요 인터뷰] 소설가 이외수씨 "정신적 풍요만 있다면 백수도 돋보여"
"1970년대 말 한 때 잡지기자였다고 신분을 밝힌 사람으로부터 편지 한 장을 받았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굉장히 폐쇄적이어서 누구와도 인터뷰를 한 적이 없었어요. 편지를 보낸 사람은 자식이 둘 딸린 가장이었는데 첫 직장이 월간 문예지였나 봅니다. 직장에서 저를 인터뷰하라는 임무를 받았지만 제가 매번 거절했어요. 그 때문에 편집장이 그 사람을 해고했고 '나 같은 사람도 있으니 인터뷰를 무조건 거절하지는 말아달라'는 내용의 편지였습니다. 그 때부턴 웬만하면 인터뷰를 거절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에 대한 악의적인 글을 썼다면 좀 고민합니다. "

-방송 출연에 CF까지 찍으시면서 '엔터테이너'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늘그막에 무슨 사단인가 싶습니다. 젊었을 때 온갖 고생을 할 때는 아무도 거들떠 보지도 않더니….사람들이 나를 찾는다는 게 나쁘지만은 않습니다. 다만 요즘 제가 갑자기 뜬 것은 아니에요. 지금까지 제가 낸 책들은 대부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습니다. 방송 때문에 제 책이 잘 팔리는 것만은 아니라는 거죠."

-지난 3월 나온 ≪하악하악≫(해냄출판사)이 25만부가 넘게 팔렸습니다. 왜 독자들이 좋아할까요.

"저는 홈페이지를 3개나 운영하는 등 젊은층과의 소통을 많이 합니다. 여기에서 익힌 인터넷 용어를 사용해 젊은 친구들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썼기 때문이 아닐까요. 생활하면서 얻은 깨달음들을 쉬운 언어로 쉽게 쓰니 찾아서 읽는 거겠죠.《하악하악》처럼 글자가 몇 개 안 들어간 책을 파는 것 보고 돈독이 올랐다고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전화번호부가 베스트셀러가 돼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개 집에서 잠을 자고,철창을 치고 글을 썼다는 등 젊은 시절의 괴벽으로도 유명합니다.

"그 때는 돈도 없고 책도 잘 안 팔렸죠.저는 보편적인 삶을 살기가 억울했습니다. 시대의 도구로 살면서 월급 몇 푼으로 입에 풀칠하는 데 온 생애를 다 바친다는 것을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던 거죠.그 이상이 돼야 한다는 욕구가 남들보다 컸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보니 글을 쓸 때도 다른 이들보다 치열하게 쓸 수밖에 없었고,가난도 남들보다 절실하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

-헤어스타일도 독특하신데요.

"대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줄곧 머리를 길러왔습니다. 그 때는 이발할 돈이 없어서 길렀어요. 작가가 된 다음에는 책을 쓰는 동안 머리카락을 자르면 맥이 빠지는 기분이 들어서 이 스타일을 고수했지요. 책을 쓰기 시작할 때는 차분한 마음자세를 갖기 위해 자르지만 탈고하고 나면 다시 이 상태가 되는거죠.이젠 나이가 드니 감정조절이 잘 돼서 일부러 자르진 않습니다. 그만큼 쉽게 글을 쓰게 된거죠.≪하악하악≫은 책이 나오니까 집사람이 '도대체 언제 썼냐'고 물었을 정도였죠."

-열등감이 심했다고 했는데 이제 극복하셨나요.

"극복했죠.누구에게나 열등감은 있는데 제가 남보다 좀 많았던 것 같아요. 저는 그걸 없애려고 했다기보다 제 장점 하나만 살리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글을 썼고요. 장점이 커지니 다른 단점들을 가리게 되더군요. 사람들은 누구나 존재가치가 있습니다. 그것을 찾아서 올인한다면 제 말에 공감할 수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병뚜껑만 10년을 주워도 돋보이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10년을 안 바치는게 문제인거죠.사람들은 10년이라는 질풍노도의 과정보다는 단박의 '질풍 로또'만을 바라거든요. "

-문단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했다고 보시는지요.

"문단에서 전 독립군이자 이단아죠.어떤 이는 저를 보고 지구상에서 가장 저평가된 작가라고도 합니다. 예전엔 저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권위가 떨어지는 일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제 고정 독자만 40만명에 가깝습니다. 책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무조직의 조직이라고나 할까요. 이런 상황에서 저를 낮게 평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증스럽죠."

-학창시절에 도서관의 책은 모두 읽었다고 들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책보다 게임,PC 등에 더 빠져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책 많이 안 읽어 인생 말아먹은 사람을 숱하게 봤습니다. 책을 많이 읽으면 어딜 가도 돋보이죠.심지어 백수짓을 해도 눈에 띕니다. 인간은 외적 빈곤에 내적 빈곤까지 겹치면 더이상 탈출구가 없습니다. 책으로 정신적인 풍요라도 갖춰야죠.돈도 없으면서 마음도 가난한 사람이 어디 장가라도 제대로 가겠습니까. "

-한 때 선생님처럼 방황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한 마디 하신다면.

"방황은 할 수록 좋지만 길게 하진 말아야 합니다. 방황은 젊은이들에게 필수적인 통과의례죠.무통분만과 불로소득을 꿈꾸는 이 시대에서 젊은 시절의 아픔을 끌어안을 수 있는 방황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방황 자체가 생을 대표하는 모습이어서는 안 되죠.방황은 내 삶의 정착지를 발견하기 위한 과정일 뿐입니다. "

-앞으로 어떤 책을 쓰고 싶으신가요.

"덮고 나면 오랫동안 행복을 느끼는 책을 쓰고싶어요. 지금까지는 인물들이 무겁고 절망적인 경우가 많았거든요. 이젠 독자에게 약이 될 수 있는 글을 쓸까 합니다. "

글=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
사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