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에 선 건설사] (3) 외환위기 때보다 어렵다는데… '터뷸런스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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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황 누리다 갑자기 침체 '터뷸런스 공포'
"아파트 짓기가 겁나요. 외환위기 때보다 훨씬 심각해요. "(M시행사 S사장)
건설업계 사람들은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때보다 더 어렵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실제 그럴까. 한국경제신문이 10년 전과 △미분양률 △부도율 △이자율 △영업이익률 등 각종 통계를 비교한 결과 미분양률만 엇비슷하게 나왔을 뿐 나머지 수치는 지금이 훨씬 나은 것으로 분석됐다.
그런데도 건설업계가 고통을 호소하는 것은 2001∼2005년 누린 호황국면에서 급작스럽게 침체국면에 부닥치면서 경착륙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마치 비행기가 이상기류를 만나 뚝 떨어지는 '터뷸런스(turbulence)'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승객이 느끼는 공포감이 큰 것과 같다.
◆미분양은 외환위기 수준 웃돌아
건설업계가 가장 큰 고통을 호소하는 미분양 아파트 물량을 보자.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외환위기 때인 1998년 말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10만2701가구.이에 비해 올 4월엔 12만9859가구.지금이 26.4%(2만7158가구) 더 많다. 이 중 '악성'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 비율은 10년 전이 17.6%로 현재 16.3%와 엇비슷하다.
"회사 이미지를 고려해 신고되지 않은 물량을 합치면 실제 미분양 물량은 25만가구에 달할 겁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
하지만 다른 지표들은 지금이 훨씬 낫다. 부도율이 대표적이다. 1998년 부도로 문을 닫은 건설사는 2103개.전체(2만9639)의 7.01%다. 1997년에도 1352개(4.86%)가 쓰러져 2년 만에 3455개가 사라졌다. 지난해의 경우 5만4743개사 중 125개가 쓰러져 부도율은 0.23%였다. 올 들어 6월까지 180개사가 부도를 맞았지만 비율은 0.32%에 불과하다.
건설사들의 체력도 몰라보게 강해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업체(400개 기준)의 매출액 증가율(전년대비)은 7.43%,영업이익률(영업이익/매출액)은 6.07%다. 1998년엔 각각 -16.82%와 2.02%였다.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국내 기업 평균치(5.5%)를 웃돈다.
평균 부채비율은 작년 말 131.62%로 1998년(659.43%)보다 크게 낮다. 차입금에 대한 평균 이자율도 연 6.93%로 외환위기 당시(연 11.17%)보다 많이 떨어졌다. 지급능력을 보여 주는 유동비율(유동자산/유동부채)은 174.75%로 10년 전(107.02%)보다 높다. 채무상환능력을 나타내는 이자보상비율(영업이익/금융비용)은 지금이 391.0%로 외환위기 때의 26.7%보다 훨씬 높다.
"건설사들은 환란을 겪으면서 부채비율을 낮추는 등 체질을 개선했고 2001년부터 2005년까지 부동산 호황기 때 벌어놓은 돈이 있어 아직은 고통을 견뎌낼 만하다"(주택산업연구원 관계자)고 볼 수 있다.
◆자금조달길 꽉 막혀
하지만 업체가 느끼는 체감경기는 이미 '제2의 외환위기'나 마찬가지다. SK증권 김석준 연구원은 "대출제한 등 각종 규제와 세금부담,금리상승 등으로 주택 수요가 급속히 위축됐고 미분양으로 대규모 자금이 묶여 있어 건설업계가 피부로 느끼는 어려움은 외환위기 때보다 더 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자재값 급등으로 원가 부담이 가중됐다. 철근값(16㎜기준)은 작년 말 t당 58만5000원에서 현재 103만3000원으로 반년 새 76.6%나 뛰었다. 1998년엔 평균 36만1100원이었다. 대형 A사 관계자는 "외환위기 당시 3.3㎡(1평)당 건축비가 250만~280만원이었는데 지금은 350만~450만원으로 두 배 가까이 올라갔다"며 "여기에 땅값 상승에 따른 부담을 감안하면 수익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분양가도 덩달아 뛰었지만 업계에서는 이 정도로는 땅값과 자재비 상승분을 상쇄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의 3.3㎡(1평)당 평균 분양가는 1998년 493만원에서 올해는 1225만원으로 1.5배가량 비싸졌다.
업체 수가 급증한 것도 건설사들을 힘들게 하는 요인.6월 말 현재 국내 건설업체 수는 5만5818개.2000년 만해도 3만9801개였지만 8년 만에 40%(1만6017개)나 급증했다.
이렇다보니 올 들어 일반 건설사 4곳 중 1곳은 공사를 한 건도 수주하지 못했다. 건설공제조합에 따르면 6월 말 기준으로 일반 건설사 1만2876곳 중 공사를 수주하지 못해 공사계약보증이나 하자.선급금보증 등 공사보증서를 발급받지 않은 업체는 3200개사로 24.9%에 달한다. 공제조합 관계자는 "이런 현상은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라며 "회사 규모가 작을수록 경영난이 심하다"고 말했다.
두성규 건설산업연구원 건설경제연구실장은 "외환위기 때엔 건설사들이 연 12~14%대의 금리로 자금을 빌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단기자금을 조달할 길이 꽉 막혔다"며 "사채시장이 엄청 위축된 데다 부도 괴담 등에 예민해진 금융회사들이 대출심사를 강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명동 사채시장 분위기도 냉랭하다. 어음중개업체인 J사 관계자는 "요즘 건설사들의 어음은 아예 취급하지 않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건설사들이 시장변화에 제대로 대응 못하고 사업다각화를 소홀히 한 데다 무리한 사업 확장과 해외 진출로 위험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며 "얼마 전까지 잘 나가다가 갑자기 어려워지니까 훨씬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
건설업계 사람들은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 때보다 더 어렵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실제 그럴까. 한국경제신문이 10년 전과 △미분양률 △부도율 △이자율 △영업이익률 등 각종 통계를 비교한 결과 미분양률만 엇비슷하게 나왔을 뿐 나머지 수치는 지금이 훨씬 나은 것으로 분석됐다.
그런데도 건설업계가 고통을 호소하는 것은 2001∼2005년 누린 호황국면에서 급작스럽게 침체국면에 부닥치면서 경착륙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마치 비행기가 이상기류를 만나 뚝 떨어지는 '터뷸런스(turbulence)'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승객이 느끼는 공포감이 큰 것과 같다.
◆미분양은 외환위기 수준 웃돌아
건설업계가 가장 큰 고통을 호소하는 미분양 아파트 물량을 보자.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외환위기 때인 1998년 말 전국 미분양 아파트는 10만2701가구.이에 비해 올 4월엔 12만9859가구.지금이 26.4%(2만7158가구) 더 많다. 이 중 '악성'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 비율은 10년 전이 17.6%로 현재 16.3%와 엇비슷하다.
"회사 이미지를 고려해 신고되지 않은 물량을 합치면 실제 미분양 물량은 25만가구에 달할 겁니다. "(대한건설협회 관계자)
하지만 다른 지표들은 지금이 훨씬 낫다. 부도율이 대표적이다. 1998년 부도로 문을 닫은 건설사는 2103개.전체(2만9639)의 7.01%다. 1997년에도 1352개(4.86%)가 쓰러져 2년 만에 3455개가 사라졌다. 지난해의 경우 5만4743개사 중 125개가 쓰러져 부도율은 0.23%였다. 올 들어 6월까지 180개사가 부도를 맞았지만 비율은 0.32%에 불과하다.
건설사들의 체력도 몰라보게 강해졌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건설업체(400개 기준)의 매출액 증가율(전년대비)은 7.43%,영업이익률(영업이익/매출액)은 6.07%다. 1998년엔 각각 -16.82%와 2.02%였다. 지난해 영업이익률은 국내 기업 평균치(5.5%)를 웃돈다.
평균 부채비율은 작년 말 131.62%로 1998년(659.43%)보다 크게 낮다. 차입금에 대한 평균 이자율도 연 6.93%로 외환위기 당시(연 11.17%)보다 많이 떨어졌다. 지급능력을 보여 주는 유동비율(유동자산/유동부채)은 174.75%로 10년 전(107.02%)보다 높다. 채무상환능력을 나타내는 이자보상비율(영업이익/금융비용)은 지금이 391.0%로 외환위기 때의 26.7%보다 훨씬 높다.
"건설사들은 환란을 겪으면서 부채비율을 낮추는 등 체질을 개선했고 2001년부터 2005년까지 부동산 호황기 때 벌어놓은 돈이 있어 아직은 고통을 견뎌낼 만하다"(주택산업연구원 관계자)고 볼 수 있다.
◆자금조달길 꽉 막혀
하지만 업체가 느끼는 체감경기는 이미 '제2의 외환위기'나 마찬가지다. SK증권 김석준 연구원은 "대출제한 등 각종 규제와 세금부담,금리상승 등으로 주택 수요가 급속히 위축됐고 미분양으로 대규모 자금이 묶여 있어 건설업계가 피부로 느끼는 어려움은 외환위기 때보다 더 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자재값 급등으로 원가 부담이 가중됐다. 철근값(16㎜기준)은 작년 말 t당 58만5000원에서 현재 103만3000원으로 반년 새 76.6%나 뛰었다. 1998년엔 평균 36만1100원이었다. 대형 A사 관계자는 "외환위기 당시 3.3㎡(1평)당 건축비가 250만~280만원이었는데 지금은 350만~450만원으로 두 배 가까이 올라갔다"며 "여기에 땅값 상승에 따른 부담을 감안하면 수익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분양가도 덩달아 뛰었지만 업계에서는 이 정도로는 땅값과 자재비 상승분을 상쇄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의 3.3㎡(1평)당 평균 분양가는 1998년 493만원에서 올해는 1225만원으로 1.5배가량 비싸졌다.
업체 수가 급증한 것도 건설사들을 힘들게 하는 요인.6월 말 현재 국내 건설업체 수는 5만5818개.2000년 만해도 3만9801개였지만 8년 만에 40%(1만6017개)나 급증했다.
이렇다보니 올 들어 일반 건설사 4곳 중 1곳은 공사를 한 건도 수주하지 못했다. 건설공제조합에 따르면 6월 말 기준으로 일반 건설사 1만2876곳 중 공사를 수주하지 못해 공사계약보증이나 하자.선급금보증 등 공사보증서를 발급받지 않은 업체는 3200개사로 24.9%에 달한다. 공제조합 관계자는 "이런 현상은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라며 "회사 규모가 작을수록 경영난이 심하다"고 말했다.
두성규 건설산업연구원 건설경제연구실장은 "외환위기 때엔 건설사들이 연 12~14%대의 금리로 자금을 빌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단기자금을 조달할 길이 꽉 막혔다"며 "사채시장이 엄청 위축된 데다 부도 괴담 등에 예민해진 금융회사들이 대출심사를 강화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명동 사채시장 분위기도 냉랭하다. 어음중개업체인 J사 관계자는 "요즘 건설사들의 어음은 아예 취급하지 않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건설사들이 시장변화에 제대로 대응 못하고 사업다각화를 소홀히 한 데다 무리한 사업 확장과 해외 진출로 위험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며 "얼마 전까지 잘 나가다가 갑자기 어려워지니까 훨씬 힘들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건호 기자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