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에 의하면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 안경환 위원장이 지난 15일 경기도 한 초등학교에서 특강을 하면서,체벌은 선생님의 마지막 수단이라며 체벌을 합리화한 발언을 했다고 한다. 체벌은 양시론(兩是論)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독약이 약이 아니듯이 체벌은 벌이 아니라 폭력이다. 근대법을 채택한 현대국가는 자유형(自由刑),재산형(財産刑)과 함께 사형제도 논란은 있지만 생명형(生命刑)을 인정한다. 하지만 신체에 벌을 가하는 신체형(身體刑)은 실정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리고 체벌의 교육적 필요성,즉 '사랑의 매'라든가 '매'가 최후의 수단이라는 주장은 교육현장에서 체벌을 상시적으로 합리화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몇 해 전 교육부가 학년별, 남녀 학생별로 체벌의 부위와 매를 때리는 횟수를 명기한 체벌에 관한 '지침'을 하달한 부끄러운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국민소득 2만달러의 나라에서 체형 '지침'이 나오더니,이제는 자칭 인권의 보루라고 하는 인권위 수장이 '체벌'을 실질적으로 권장한 격이나 마찬가지이다.
하긴 그간의 인권위 '권고' 사항을 보면, 인권위가 과연 보편적 인권 신장에 경주했는가 의심케 한다. 두 달에 걸쳐 벌어진 쇠고기 문제 시위와 관련하여 치안당국의 과잉진압에 관한 조사를 '권고'했다고 한다. 이 '권고'를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위한 조치로 볼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반 시민과 주변 상인에게 피해를 준 불법시위에는 침묵하면서 불법시위 진상조사와 피해자 보상에는 자신들의 주특기인 '권고'조차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며칠 전 발생한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에 관하여 어떤 조치도 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권위는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실현한다는 본연의 일에 충실하려면,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인권에 보다 적극적인 관심과 조치를 취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북한인권, 특히 북한 아동의 기아 문제, 그리고 남북한 재소자들의 인권 보호 및 신장 문제가 그것이다. 인권의 보편적 가치는 국가기관이나 국가권력 또는 기타의 권력으로부터 온당하게 보호받지 못하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 개인이 인권의 수혜ㆍ행사자가 되도록 할 경우에 정당화된다.
반대로 보편적 인권을 빌미로 월권한 경우도 있다. 참여정부 당시 인권위는 '일기 검사는 아동의 사생활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이유로 일기검사(사실상 일기 쓰기를 통한 제반 교육 행위)를 금지시키는 '권고'를 내린 바 있다. 교육부는 이를 받아들여 각 시ㆍ도 교육감에게 '일기를 강제로 쓰게 하거나, 일기를 잘 썼다는 근거로 상을 주지 말라'는 아주 구체적인 '지침'을 내린 바 있다. 만약 위암 발병률이 높다고 인권위가 위암에 관한 '권고'를 내고,복지당국은 이를 근거로 병ㆍ의원과 의사협회 등에 위암 진단과 처방을 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면 어찌 할 것인가? 작문력 향상인가 사생활 보호인가 하는 일기지도 실시여부나 폐지되어야 할 체벌을 대신할 대체벌 개발은 전문직으로서 교사의 권한과 책무성에 속하는 일이다.
그날 인권위 위원장은 세계인권선언 제정과 관련해 '모든 인류에게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자유,종교의 자유,이유 없이 잡혀 가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아이들에게 역설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인류'에 정치수용소에 잡혀 있는 북한 동포,영양실조에 걸린 북한 아동,납북자,불법시위 피해자가 모두 포함된다고 아이들에게 설명했는지 묻고 싶다. 정작 해야 할 일은 방기(放棄)하고 놓아두어도 좋을 사안은 시시콜콜 간여하고 있는 인권위를 가리켜 항간에 '완장 찬 권력'이라고 떠도는 이유를 새겨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