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비만을 예방한다며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작년 12월 의욕적으로 내놓은 '식품등위표시기준'이 시행 7개월 만에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제품 포장단위에 따라 1회 섭취하는 양을 기준으로 영양정보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한다는 게 이 기준의 취지였다. 그러나 '1회 제공량'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이 이를 업체 자율에 맡기면서 구멍이 숭숭 뚫린 정책이 돼 버렸다. 식품업체들 입장에선 조금이라도 1회 제공량을 적게 잡아 가급적 저칼로리 제품인 양 보이려 할 것이라는 기초적인 정책 파급효과조차 예상하지 못한 결과다.

A음료의 경우 500㎖ 페트병의 '1회 제공량'을 150㎖로 잡아 65㎉로 표시하고 있다. 페트병 하나를 다 마시면 총 216㎉를 섭취하는 셈이다. 대다수 소비자들은 자신이 한 병을 다 마실 때 제품에 표시된 65㎉만 섭취하는 것으로 알지만 실제론 3.3배에 달하는 셈이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어떤 회사가 자사 제품에 열량이 많다고 표시하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처음부터 시장조사와 업계 반응 등을 철저히 파악하고 시행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라고 식약청의 허술한 정책 수립과정을 꼬집었다.

결국 식약청은 21일 1회 제공량을 제품의 전체량으로 수정하고,제품 전체의 열량 등 영양정보를 명시하도록 하는 '1회 제공량 규정 개선방안'을 내놨다. 과자 한 봉지,콜라 한 캔 등 한번에 먹는 제품은 업체 임의의 1회 제공량이 아니라 제품 전체량의 열량을 표시토록 한 것이다. '왜 처음부터 1회 제공량 개념을 정확히 하지 못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식약청 관계자는 "정책이 진행되면 보충할 부분도 생기지 않느냐"며 "식음료업체들이 알아서 잘 처리해 줄 것으로 믿었는데 미흡한 부분이 많아 죄송하다"고 말끝을 흐렸다.

미국에서는 과자 한 개당 칼로리를 표기해 소비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수준의 공신력을 식약청에 기대하진 않는다. 하지만 잇단 식품안전 파동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FDA'를 지향한다는 식약청과 국민의 높아진 눈높이 사이의 간극은 좀체 좁혀지지 않는 것 같다.

장성호 생활경제부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