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대행사 이엠엠의 고영무 과장(30)은 8월 초 떠나려 했던 호주 멜버른 휴가여행을 포기했다. 멜버른의 친구집에 머물며 5박6일간 '짠돌이 여행'을 계획했으나 그마저 여의치 않았던 탓이다. 지난 1월 208달러였던 왕복 유류할증료가 7월부터 370달러로 오르면서 항공료가 급등한 데다 고환율로 인한 여행경비 부담을 감당할 수 없어 결국 국내 휴가로 U턴했다.

고 과장은 "예년에 90만원 선이던 항공료가 130만원대로 뛰고 환율도 오르면서 200만원이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던 여행경비가 300만원 선을 훌쩍 넘어섰다"며 "대신 친구 3명과 함께 60만원씩 들고 동해안에서 휴가를 보내기로 했다"고 전했다.

경기 침체 속에 여행경비 급등으로 해외 여행을 포기하고 국내로 발길을 돌리는 여행객이 늘고 있다. 공무원 외유 자제령도 해외 여행 위축에 한몫하고 있다.

22일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 6월 내국인 해외 여행객 수는 100만3907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65% 줄어들었다. 지난 5월 전년 대비 0.68% 감소한 이래 두 달 연속 감소세를 보인 것이다. 해외 여행객 수가 2개월 연속 줄어든 것은 중증 급성호흡기 증후군(SARS)이 중국과 동남아를 휩쓸었던 2003년 이후 처음이다.

해외 여행객 감소는 7,8월 성수기에도 이어져 대부분 패키지 여행사의 예약률이 뚝 떨어지고 있다. 하나투어의 경우 7월 예약자는 22일 현재 9만8676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8.5% 격감했다. 최성수기인 8월 출발 예약자도 7만9153명으로 2.5% 줄었다. 개별 여행객들이 찾는 해외 호텔 예약 사이트의 클릭수도 정체돼 있다. 호텔자바의 김형렬 이사는 "7월은 클릭 수가 급증하는 시기인데도 홈페이지 방문자 수가 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강원 제주 등 주요 관광지의 펜션이나 콘도에 예약자가 몰리면서 국내 여행이 모처럼 호황을 맞고 있다. 대표적 펜션예약 업체인 휴펜션 관계자는 "홈페이지를 통해 펜션을 예약하는 이용자들이 지난해보다 20% 증가했다"며 "8월 예약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펜션예약 사이트인 캐빈스토리의 7,8월 펜션 예약률도 전년 대비 70% 이상 늘어났다. 이 회사의 이병국 대표는 "국내 여행은 2주 전부터 예약이 들어오는데 올해는 7,8월 예약이 6월 중순부터 시작됐다"며 "2박 이상 예약자들도 지난해보다 30%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강원도 평창에서 85실 규모의 펜션 '숲속의 요정'을 운영하고 있는 김영진 사장도 "해외 휴가 여행객이 국내로 U턴하면서 객실 예약률이 전년에 비해 20% 이상 높아졌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숙박료를 일부 낮춘 것도 예약률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줬지만 기본적으로 고유가 부담으로 해외 여행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주요 콘도 역시 예약률이 치솟고 있다. 한화리조트의 정한서 과장은 "7월 현재 객실 예약률이 지난해보다 15% 이상 증가했다"며 "특히 제주 콘도의 경우 20% 이상 급등세를 보이는 등 해외 여행을 계획했던 이들이 제주도로 방향을 튼 것 같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제주도를 찾은 관광객이 지난해보다 보름 앞선 지난 9일 300만명을 돌파했다고 제주도청은 밝혔다.

알뜰 여행의 대명사인 버스 패키지를 찾는 여행객들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느낌여행사의 전형기 이사는 "기름값 부담 때문에 자가용보다 버스 패키지 상품을 이용하려는 이들이 많아졌다"며 "8월 중순까지 주말 상품은 예년보다 10% 이상 고객이 늘었다"고 전했다.

수도권 물놀이 시설인 캐리비안베이에도 알뜰 피서객들이 몰리고 있다. 이달 들어 지난 20일까지 입장객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51.8% 증가했고 매출 역시 20.7%나 늘었다.

대명리조트의 고재춘 팀장은 "비발디파크에 있는 물놀이 시설인 오션월드에 주말마다 1만7000여명이 찾는 등 매 주말이 극성수기"라고 말했다. 아예 도심에서 휴가를 보내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신라호텔의 경우 20만~32만원(1박2일)짜리 객실 패키지를 지난해보다 2배 이상 늘어난 250여실 팔았다.


김재일/박종서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