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을 처음으로 국제회의장에 공개했다. 북측이 우리측의 조사단 방북 요구에 응하지 않는 상황에서 국제 공조를 통한 여론몰이로 북한을 압박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22일 열린 아세안+3 장관회의에서 금강산 사건의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해 우리측 조사단의 방북 접수를 북한 측에 촉구하고 있음을 참가국들에 설명했다.

유 장관은 이날 싱가포르 나탄 대통령,고촉동 선임장관 등 고위 인사들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금강산 문제를 설명하고 관련국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 참가국들도 남북간이 대화를 통해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금강산 사건을 국제 이슈화해 북한의 대화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포석이다.

미국 측도 정부 방침에 동조하고 나섰다. 6자회담 미국 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이날 김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만난 자리에서 금강산 및 독도 이슈에 대해 높은 관심을 나타내 눈길을 끌었다.

힐 차관보는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과 관련,"50세가 넘은 중년의 여성 관광객을 사살한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북한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또 "금강산 피격 사건과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문제가 결국 한반도 평화 및 북핵 문제 해결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다"고 덧붙였다.

힐 차관보는 이어 "6자회담이 검증이라는 중요한 국면에 접어든 이때 이 같은 문제가 발생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6자회담이 중요한 목적을 갖고 있는 가치있는 프로세스인데,이것이 장외에 의해서 악영향을 받지 않을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24일 열릴 예정인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도 '금강산 피격 사건' 진상 조사를 공개적으로 촉구하는 등 계속해서 국제 이슈화에 나서기로 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22일 샹그릴라 호텔에서 기자와 만나 "ARF 지역정세 자유토의 시간에 금강산 사태를 참가국들에 설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금강산 사건 국제 이슈화 방침에 북한이 구체적인 반응을 보이며 행동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남북 외교장관 회담은 아직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이날 싱가포르에 도착한 북한 박의춘 외무상은 금강산 피격 사건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을 하지 않은 채 샹그릴라 호텔로 들어갔다. 동행한 이동일 과장은 남북 외교장관 회담과 관련,"아직 누구를 만날지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한편 미국이 이미 지난달 베이징 6자회담에서 북한에 핵신고 검증계획 제안서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소식통은 "미국이 핵 검증 계획서 초안을 북한에 제시했고 이를 다른 참가국들도 회람하고 있다"면서 "이제 공은 북한 쪽으로 넘어갔다"고 말했다.

싱가포르=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