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는 격이죠."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해외사업 부지를 매각 중인 중견건설업체 A사의 B임원 말이다. 그는 "내부 비상경영대책회의에서 정부의 미분양해소 추가대책을 기다리는 것보다 빨리 자구책을 마련해 실행하는 게 현명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전했다.


이 회사는 얼마 전 기업어음(CP) 신용등급이 한 단계 떨어질 정도로 다급해지자 두바이 땅을 처분키로 했다. 세계 최고층 빌딩으로 지어지는 '버즈 두바이' 인근에서 2004년 500억원을 주고 사뒀던 땅이다. B임원은 "건설업체라고 하면 제2금융권은 물론 사채시장에서조차 문전박대를 당하는 상황"이라며 "지금 시점에서 자금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은 자산매각이 유일하다"고 털어놨다. 두바이 부지 매도 희망가는 2100억원 수준. 사장 한 명이 두바이에 상주하며 매각을 지휘하고 있다.

위기에 몰린 건설업체들이 자구책에 사활을 걸었다. 정부에 "살려달라"며 SOS 신호를 보내는 한편 자금 확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내놓고 있다. 사업의 '씨감자'격인 아파트 부지를 미련없이 팔고 있다. '알토란'같은 사업시행권도 눈물을 머금고 포기한다.

가까스로 부도 우려의 기업 이미지를 지워가고 있는 B업체는 신도시급 택지지구에서 낙찰받은 땅을 처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돈이 없어 자체적으로 사업을 하기 힘들어지자 대형 업체를 시공사로 끌어들이기로 했다. 사실상 땅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수도권에서 대형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려던 중견 C업체는 누가봐도 사업성이 좋은 시공권을 포기했다. 역세권 예정지인데다 복합상업시설까지 들어설 지역인데도 현금흐름을 위해 사업부지를 포기했다. 몇 백억원은 너끈히 벌어들일 만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당장의 이자 부담을 견딜 수 없어서다.

도급순위 10위권의 한 대형건설업체 관계자는 "구입원가의 80~90% 수준을 제시하면서 땅을 사달라고 읍소하는 중견건설업체들이 부쩍 늘었다"며 "시장에 돌아다니는 물건 가운데 유망한 입지도 많지만 분양시장이 어려워 쉽게 사들이지 못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지방은 아예 검토대상에 오르지도 못한다고 했다.

D사와 E사는 지방자치단체에서 허가받은 가격보다 아파트 분양가를 내렸다. D사 측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금융비용 등을 감안할 때 싸게라도 파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사정이 급한 업체들은 미분양 아파트 '땡처리'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정상 분양가에서 30%까지 할인한 값으로 미분양을 통째로 팔아치운다. 대한주택공사가 미분양 아파트를 사준다고 했을 때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업체들이 서로 사달라고 난리다. "어느 업체 것만 사준다"는 특혜 의혹이 불거져 주택공사가 해명까지 했을 정도다. 매입 규모도 3월까지는 100여가구에 그쳤으나 7월 현재 1300가구를 넘어섰다.

대기업 계열 F사도 부산에서 미분양 아파트를 주공에 헐값에 팔아치웠다. 주공 관계자는 "2차에 걸쳐 매입의뢰 신청을 받은 결과 70단지 8621가구가 팔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이걸 다 사주려면 집값을 한 채당 3억원으로 잡아 2조5000억원대에 이른다는 얘기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설업체들은 민간 부동산펀드에도 목을 매고 있다. 다올부동산자산운용이 미분양펀드를 출시하자 주택업체들이 2조원어치의 미분양 아파트에 투자해 달라고 줄을 섰다. 다올부동산자산운용 관계자는 "시공능력평가 50위 안에 드는 업체를 중심으로 미분양아파트를 사들이기 때문에 기준에서 탈락하는 업체의 아파트가 상당수"라고 말했다.

위기설이 돌았던 G업체는 언론을 상대로 기업설명회(IR)를 검토 중이다. 금융권이 아니라 기자들을 상대로 기획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회사 관계자는 "기업설명회를 한다는 것 자체가 위기설을 기정사실화한다는 반론이 있기도 하지만 시장의 오해를 해소한다는 측면에서 언론에 회사 사정을 솔직히 알리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