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이란 관측이 확산되면서 전문가들 사이에 금리 인상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옹호론과 '자칫하면 경기 침체를 부를 수 있는 데다 가계 부실이 우려된다'는 비판론이 맞서는 상황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3일 내놓은 '스태그플레이션 진단과 정책대응' 보고서에서 "한국 경제는 '완만한 스태그플레이션(저성장-고물가)' 국면"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금리 인상은 부진한 내수경기를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금리 인상은 하반기 평균 유가가 배럴당 150~200달러를 유지해 본격적인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 돌입하는 경우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제 유가(두바이유 기준)가 배럴당 130달러 미만인 지금 상황에선 금리 인상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대신 공공요금 인상을 내년으로 미루는 등 미시적 물가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도 이날 한반도선진화재단 주최로 열린 '위기의 한국 경제 진단과 처방' 세미나에서 "섣불리 금리를 올리면 물가와 경기를 다 놓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물가 상승은 수요 측면에서 비롯됐다기보다 유가 상승 등 주로 비용측 요인인 만큼 금리 인상 같은 유동성 억제책은 신중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는 국내 경제가 처할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인플레이션→금리 인상 및 저환율 정책→경상수지 악화와 주가.부동산 가격 하락→소비와 투자 위축→가계의 대출 상환 능력 감퇴→주택담보대출 부실화→금융시장 신용경색→한계기업 도산'을 꼽았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도 "지금 같은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선 금리 인하도 어렵지만 인상은 더더욱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LG경제연구원은 앞서 발표한 '2008년 하반기 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 국내 경제는 '경기보다 물가가 더 걱정'"이라며 "한은이 한두 차례 금리 인상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물가 불안을 방치할 경우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확산돼 경제의 안정성장 기조가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일각에선 정부의 공공요금 인상이 현실화될 경우 하반기 물가 상승률이 당초 한은이 예상한 5.2%보다 훨씬 높은 6%에 육박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한은도 경기 하강과 물가 상승 압력 사이에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지난 10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금리를 동결했지만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선 "한은 본연의 책무(물가 안정)"를 강조하며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지만 이 총재가 실제 '액션'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여차하면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기는 했지만 금리 인상의 충격이 너무 크다는 이유에서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