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구 칼럼] '가격 파괴' 역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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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파괴라니? 고유가 원자재 가격 폭등 때문에 전방위적으로 물가가 치솟는 마당에 가격파괴라는 말은 참으로 엉뚱하게 들릴 게 틀림없다. 하지만 찬찬히 생각해 본다면 결코 엉뚱한 이야기가 아니다. 가격파괴를 위한 노력이 요즘처럼 절실한 때도 없는 까닭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성장이 둔화되고 물가는 크게 오르면서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 직면해 있다. 인플레 기대심리가 가세해 유가나 원자재 가격과는 상관없는 것들까지 줄줄이 사탕식으로 오른다. 게다가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며 자산 디플레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어 중산층과 서민들의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고,생활고(生活苦)는 날로 증대되는 양상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을 과연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느냐는 국민들은 물론 기업들에도 최대 현안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1990년대 자산디플레와 경기불황이 함께 엄습하면서 버블 붕괴를 경험했던 일본의 사례는 충분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 버블붕괴 초기 일본 열도를 휩쓸었던 대표적 현상은 바로 가격파괴 열풍이었다. 주머니가 얄팍해진 소비자들을 붙잡기 위해 기업과 유통업체들이 저가 제품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던 결과다. 자동차만 해도 80만엔대 제품까지 등장했고 TV 냉장고 세탁기 같은 전자제품들도 해외공장이나 수입품을 활용해 저가 모델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왔다. 중국산 재료로 중국에서 가공해 신사 정장 한 벌을 1만~3만엔대에 판매했던 의류 체인점은 순식간에 전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음식점들 역시 경쟁적으로 가격인하에 나서며 안간힘을 다했다. 일정액만 내면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는 다베 호다이(무제한 먹는 집),노미 호다이(무제한 마시는 집) 음식점들이 유행처럼 번지고,동전 하나로 간단한 생활용품을 마련할 수 있는 100엔숍이 선보인 것도 바로 그 무렵이다. 유명 경제평론가 하세가와 게이타로는 당시 내놓은 저서 <초가격파괴의 시대>를 통해 "비가격경쟁력이란 단어는 통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고 진단했고,'미스터 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는 이런 변화를 '디플레 생활혁명'이란 단어로 축약하면서 "디플레가 일본 소비자들에게 오히려 많은 혜택을 가져다주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요즘 우리 경제는 자산디플레가 나타나기 시작한 점,경기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점,그리고 소비자들의 지갑이 급격히 얇아졌다는 점 등에서 당시 일본 상황과 유사하다. 가격이 시장경쟁의 최대 변수로 작용하게 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 셈이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가격인하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물가가 세계 선두권을 다투는 우리나라 상품가격엔 상당한 거품이 끼어있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고 보면 값을 내릴 여지 자체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 최근엔 가격파괴라 부를 만한 움직임이 조금씩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다. 예약을 인터넷으로 받고 좌석은 선착순 배정하는 방식으로 요금을 20%나 끌어내린 저가항공사들이 좋은 예다. 미분양 아파트가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일부 건설업체들이 새 아파트를 주변보다 싼 값에 공급해 분양에 성공한 것이나 L백화점이 신사복을 대상으로 세일을 없애면서 가격 자체를 끌어내린 것도 비슷한 예에 속한다 할 수 있다.
물론 고유가와 원자재가격 상승 때문에 생산자물가가 급등한 점을 고려하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가격인하엔 한계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인상 요인이 생겼다해서 그대로 가격에 전가하는 안이한 자세는 더 이상 통하기 힘들다. 경영합리화를 도모하든,부품을 줄이든,기능을 단순화하든,수입품 활용도를 높이든 가격인하를 위해 매진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가격파괴는 기업 스스로를 위한 것이자 물가고에 시달리는 소비자들을 돕는 길이기도 하다.
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
지금 우리 경제는 성장이 둔화되고 물가는 크게 오르면서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에 직면해 있다. 인플레 기대심리가 가세해 유가나 원자재 가격과는 상관없는 것들까지 줄줄이 사탕식으로 오른다. 게다가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며 자산 디플레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어 중산층과 서민들의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고,생활고(生活苦)는 날로 증대되는 양상이다. 이런 어려운 상황을 과연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느냐는 국민들은 물론 기업들에도 최대 현안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1990년대 자산디플레와 경기불황이 함께 엄습하면서 버블 붕괴를 경험했던 일본의 사례는 충분히 주목할 가치가 있다. 버블붕괴 초기 일본 열도를 휩쓸었던 대표적 현상은 바로 가격파괴 열풍이었다. 주머니가 얄팍해진 소비자들을 붙잡기 위해 기업과 유통업체들이 저가 제품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던 결과다. 자동차만 해도 80만엔대 제품까지 등장했고 TV 냉장고 세탁기 같은 전자제품들도 해외공장이나 수입품을 활용해 저가 모델이 무더기로 쏟아져나왔다. 중국산 재료로 중국에서 가공해 신사 정장 한 벌을 1만~3만엔대에 판매했던 의류 체인점은 순식간에 전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음식점들 역시 경쟁적으로 가격인하에 나서며 안간힘을 다했다. 일정액만 내면 마음껏 먹고 마실 수 있는 다베 호다이(무제한 먹는 집),노미 호다이(무제한 마시는 집) 음식점들이 유행처럼 번지고,동전 하나로 간단한 생활용품을 마련할 수 있는 100엔숍이 선보인 것도 바로 그 무렵이다. 유명 경제평론가 하세가와 게이타로는 당시 내놓은 저서 <초가격파괴의 시대>를 통해 "비가격경쟁력이란 단어는 통하지 않는 시대가 왔다"고 진단했고,'미스터 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는 이런 변화를 '디플레 생활혁명'이란 단어로 축약하면서 "디플레가 일본 소비자들에게 오히려 많은 혜택을 가져다주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요즘 우리 경제는 자산디플레가 나타나기 시작한 점,경기가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점,그리고 소비자들의 지갑이 급격히 얇아졌다는 점 등에서 당시 일본 상황과 유사하다. 가격이 시장경쟁의 최대 변수로 작용하게 될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 셈이다.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가격인하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물가가 세계 선두권을 다투는 우리나라 상품가격엔 상당한 거품이 끼어있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고 보면 값을 내릴 여지 자체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 최근엔 가격파괴라 부를 만한 움직임이 조금씩 눈에 띄는 것도 사실이다. 예약을 인터넷으로 받고 좌석은 선착순 배정하는 방식으로 요금을 20%나 끌어내린 저가항공사들이 좋은 예다. 미분양 아파트가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일부 건설업체들이 새 아파트를 주변보다 싼 값에 공급해 분양에 성공한 것이나 L백화점이 신사복을 대상으로 세일을 없애면서 가격 자체를 끌어내린 것도 비슷한 예에 속한다 할 수 있다.
물론 고유가와 원자재가격 상승 때문에 생산자물가가 급등한 점을 고려하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가격인하엔 한계가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인상 요인이 생겼다해서 그대로 가격에 전가하는 안이한 자세는 더 이상 통하기 힘들다. 경영합리화를 도모하든,부품을 줄이든,기능을 단순화하든,수입품 활용도를 높이든 가격인하를 위해 매진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가격파괴는 기업 스스로를 위한 것이자 물가고에 시달리는 소비자들을 돕는 길이기도 하다.
수석논설위원 b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