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7000억원 규모의 신용회복기금을 만들어 대출 연체자의 이자를 모두 탕감할 경우 금융회사들은 앞으로 신용도가 낮은 서민들에 대한 소액 신용대출을 꺼릴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빚 탕감을 기대해 이자를 아예 갚지 않겠다고 나서는 서민들이 늘어나는 등 연체 가능성이 지금보다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서민을 지원하는 효과가 나타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서민의 자금 조달을 더욱 옥죄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72만명 금융소외자 지원

금융위는 올해 2000억원을 투입해 46만명을 지원하고 내년에는 5000억원을 더 투입해 총 72만명에 대해 채무 재조정과 환승론을 지원하기로 했다. 기초생활수급자를 1순위로 지원하고 나머지는 자격심사를 거쳐 재산이 없고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자활 의지가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원은 부실채권 정리기금의 금융회사 배분금 중 원금을 제외한 잉여금을 활용하기로 했다. 신용회복기금이 설치되기 전인 올해는 자산관리공사 자체 자금 2000억원을 대여 형태로 활용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이와 함께 금융소외자 종합자활지원 네트워크를 올해 하반기에 구축하기 시작해 내년 중 본격 가동할 예정이다. 지금까지는 금융시스템 안에서 과거 연체채무 조정을 위주로 지원했지만 앞으로는 채무 조정,자활능력 개발,취업.창업 지원,복지 지원 등을 원스톱으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금융위는 이번 종합대책과 관련해 25일 오전 9시부터 콜센터(1577-9449)를 운영한다.

◆모럴해저드에 형평성 논란까지

정부가 금융소외자들을 지원한다지만 공공적 성격의 자금을 사용해 이자를 탕감해 주고 금리를 낮춰주는 것은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원 대상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도 형평성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임경묵 한국개발원(KDI) 연구위원은 "기본적으로 모럴해저드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우려된다"고 말했다. 임 연구위원은 "한번 이자를 탕감해 주면 앞으로도 계속 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살아 있을 것"이라며 "향후 대출을 받을 사람들도 '저번에 정부가 (이자를) 탕감해 줬는데'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원에 대한 형평성도 문제다. 영세 중소기업 등 어려운 곳은 한둘이 아닌데 개인대출 연체자만 지원해줄 수 있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금융위는 원금이 3000만원 이하며 작년 말 기준으로 3개월 이상 연체자에 대해서만 지원한다는 방침인데,이럴 경우 작년 10월 이후부터 연체한 사람들은 지원 대상에서 빠지는 문제가 생긴다.

◆선심성 서민지원대책?

신용불량자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상태에서 이 같은 대책이 나온 것에 대해 "경기 악화에 따른 선심성 서민지원대책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경기 악화에 물가 불안이 겹친 데다 대출금리마저 올라가고 있다"며 "서민들의 생활은 더 어려워지고 있어 일종의 서민대책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지원 대상자 중 기초생활수급자는 채무액에 관계없이 전체가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자격 심사에서도 1순위다.

김동환 금융연구원 연구위원도 "각국에서 채무자 구제책은 주로 미국 민주당,영국 노동당 등 진보 정권에서 나오고 보수당의 정책과는 배치되는 성격이 있다"며 "경제상황이 너무 어려운 데 따른 대책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정재형 기자 j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