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협정 서명한 체코엔 '체코산 맥주 거부'로 제재하자"

러시아가 미국의 동유럽 미사일방어(MD) 계획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이미 폐쇄된 쿠바내 러시아 첩보시설을 재가동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이 제기됐다.

러시아과학원 산하 세계경제.국제관계 연구소의 알렉산드르 피카예프 군축 분과위원장은 23일 리아 노보스티 통신사 사옥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이는 지난 8일 미국과 체코 간 MD협정 서명 이후 제기된 러시아 역외영토 칼리닌그라드에 대한 핵 무기 배치설, 전략 폭격기의 쿠바 배치설과 함께 미국에 대한 러시아의 반발 수위를 반영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피카예프 위원장은 특히 "쿠바는 미국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 미국이 러시아에 위협을 가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쿠바의 루르데스 첩보 시설을 재가동하는 것이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쿠바 수도 아바나 인근에 위치한 루르데스 기지는 러시아가 해외에 보유한 가장 큰 첩보 수집 시설로 9.11 테러 직후인 2001년 10월 폐쇄됐다.

1천~1천500명의 통신 전문가와 군 인력을 수용할 수 있는 이 기지는 미국 남부와 대서양 상공을 오가는 민간 또는 정부 통신망을 모두 감시할 수 있고 통신위성이 지구로 보내는 정보를 중간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에 앞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지난 8일 러시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체코와 레이더 기지 건설을 위한 MD 설치 협정에 최종 서명했다.

이에 러시아 외무부는 즉각 성명을 내고 "만일 미국의 전략 요격미사일 방어망이 우리 국경 근처에 배치된다면 우리는 외교적 방식이 아니라 군사력으로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엄중 경고했다.

러시아 측의 강경 대응방침이 감지되면서 폴란드와 MD 협상을 벌이고 있는 미국도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등 양국 관계가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노턴 슈워츠 공군참모총장 지명자는 23일 의회 인준 청문회에서 "러시아가 쿠바에 전략 폭격기를 띄운다면 그것은 미국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선을 넘는 일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피카예프 위원장은 미국과 MD 협정을 맺고 현재 의회 비준을 남겨둔 체코에 대해서도 제재가 필요하다면서 체코산 맥주 거부 운동을 전개하자고 제안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맥주를 좋아하는 러시아 소비자들이 체코 맥주를 마시지 않는다면 에너지 공급 중단이나 정부의 어떤 항의 서한 보다 더 강력한 제재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남현호 특파원 hyun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