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희(舞姬)들의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아슬아슬한 의상이 객석 남성 관객들의 숨을 잠시 멎게 한다. 안이 훤히 비치는 망사형 속옷을 걸친 남자 댄서가 여성 관객들과 눈을 마주치며 담담하게 몸을 흔든다. 외국 대도시 뒷골목에서 은밀히 행해지는 변태적인 성인 극장쇼의 광경이 아니다. 현재 서울에서 인기리에 공연 중인 '갬블러' '캣츠' '시카고' 등 대형 뮤지컬 무대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관객들은 뮤지컬 공연을 보면서 종종 환상의 세계에 빠지고 싶어한다. 일찍이 쇼비즈니스는 고매한 예술로부터 밑바닥의 저속한 문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집단의 욕망을 충족시키며 다수의 행복을 추구하는 엔터테인먼트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핵심에 있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바로 성(性)이다.

그 대상은 물론 눈앞에서 환상의 세계로 손짓하고 있는 미남 미녀 배우들이다. 극 중 노출 장면은 자연스러운 작품의 일부이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비록 배우라고 해도 눈앞에서 타인의 은밀한 부분을 본다는 사실에 100% 초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작가의 의도와 관계없이 관객들을 관음증적 시선에서 완전히 차단한다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이를 활용해 관객들로 하여금 과하지 않은 적정한 수위의 관음증과 성적 환상을 유발토록 하는 것은 쇼비즈니스 흥행 공식의 상위에 있다. 특히 여성 관객의 비중이 높은 공연계에서는 남자 배우들의 노출은 항상 화제를 몰고 온다.

지난해 대학로에서 장기 공연을 가졌던 뮤지컬 '동키쇼'에서는 핫팬츠 복장을 한 남자 댄서들의 노출이 극 전체를 휘감았다. 객석의 90%를 차지하는 여성 관객들 중 일부는 스스럼없이 이들의 몸을 만졌고 이러한 생생한 체험기(?)는 입소문을 타고 장기 흥행에 큰 기여를 했다. 아동 유괴와 동성애를 다룬 엽기적인 소재의 뮤지컬 '쓰릴미'는 남자 두 명만 등장하는 심각한 게이 드라마이지만 여성 관객들에게는 그들의 숨소리와 노출을 가까이에서 당당히 지켜볼 수 있는 허락된 공간일 수 있다.

1950~1960년대 여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미국의 인기 영화배우 록 허드슨이 평생 동성애자임을 숨기고 여성과 결혼한 후 아이까지 낳았지만 훗날 연예인으로는 최초로 에이즈로 사망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적이 있다. 그를 처음 발굴한 매니저 헨리 윌슨은 동성애자임이 여성 관객들에게 알려지면 절대 안 된다고 일갈하며 그 이유를 묻는 그에게 '그들을 흥분시키는 것'이 쇼비즈니스의 성공 열쇠라는 말을 했다.

강인한 남성상의 전형으로 각인되었던 그의 이중적인 삶에 수많은 여성팬들이 속은 셈이지만 동성애와 공산주의자를 동일시했던 1950년대의 매카시즘의 광풍 속에서 관객들에게 환상과 기쁨을 주었던 고인을 원망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바로 그것이 쇼비즈니스인 것이다.

조용신 공연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