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하게 베팅했다 자칫…"

지난 3월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의 지분을 팔겠다고 발표하자 시중에서는 곧바로 인수가격이 7조~8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답안이 나돌았다. 포스코 두산 GS 한화 등 굵직한 기업들이 하나 둘 인수전에 참여하면서 대우조선해양의 몸값은 더욱 부풀려졌다. 한때는 '10조원 설'까지 나돌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런 열기가 한풀 꺾이는 양상이다. '과도한 기업 인수.합병(M&A) 대출을 억제하겠다'는 정부 발표와 주식시장의 침체,향후 경기에 대한 불안감,금리 상승 추세 등이 한꺼번에 겹친 탓이다.

인수를 노리는 기업들 사이에서도 '무리한 베팅'의 후유증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신 시너지효과 등 가격 이외의 부분을 다듬는데 공을 들이는 분위기다.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이 '제2라운드'에 접어든 셈이다.


◆8조원에서 6조원 안팎으로 낮아져
몸값거품 꺼지는 대우조선

지난 5월 말 주당 4만6000원 선을 오르내리던 대우조선해양의 주가는 이달 중순 3만6000원대까지 내려 앉았다. 이로 인해 9조원에 육박하던 시가총액도 8조원대로 떨어졌다. 산업은행과 자산관리공사가 내놓은 지분(50.3%)의 액면가격은 4조원 대로 주저앉았다. 최근 들어 민유성 산업은행장이 매각작업을 다음달 중 재개하겠다고 발표한데다 2분기 실적이 예상보다 좋게 나오면서 주가가 반등하고 있지만 연중 최고치 수준에는 여전히 못 미친다.

여기에 이달 초 발표된 정부의 M&A대출 억제방침이 겹치면서 인수가격 예상치는 더욱 내려가는 추세다. 최근의 금리 상승 추세도 부담이다. 안지현 NH증권 애널리스트는 "얼마전까지 8조원대에서 거론되던 인수가격이 최근에는 6조원 안팎으로 낮아지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인수후보 기업들도 베팅 예상액수를 낮추는 분위기다. 이상하 두산그룹 전무는 "과도한 대출을 규제하려는 정부의 의지가 확고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부채비율이 일정 수준을 넘을 경우 높은 금액을 써내더라도 인수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승자의 저주'가 두렵다

최근 몇몇 기업들이 대형 매물 인수에 성공한 뒤 오히려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도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참여한 기업들을 움츠리게 만드는 요인이다. 게임의 승자에게 '축복' 대신 '저주'가 내린 경우가 적지 않았다.

향후 경기에 대한 전망이 비관적이라는 것도 부담이다. 빠른 시일 내에 인수자금을 회수할 가능성이 낮아진 것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대형 M&A를 성사시킨 모 그룹은 '바이백 조항(주가가 일정 수준 이하일 때 되사주는 조건)' 등으로 인해 인수 후에 재무부담이 지나치게 커지고 있다"며 "무리한 베팅은 인수업체와 피인수업체 모두에게 재앙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수후보 기업들 내부에서도 경각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유시왕 한화그룹 부사장은 "내부적으로 '승자의 저주'에 대한 우려가 높은 게 사실"이라며 "대우조선해양에 매겨지고 있는 가격이 과연 합리적인지,조선경기가 언제까지 호황일지 등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합집산 가속화하나

인수후보 기업들의 관심이 '비가격적 요소'로 이동하면서 컨소시엄을 구성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최종 인수전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최대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그림'을 만들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주변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이재원 동양종금증권 연구원은 "막판으로 갈수록 이합집산이 더욱 치열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이동희 포스코 부사장도 "단독으로 대우조선을 인수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컨소시엄 구성을 기정사실화했다. 이 과정에서 국내 조선업체와 해운업체에 러브콜이 몰릴 것이라는 전망도 대두되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포스코 두산 등 현재 인수전에 참여한 기업들은 모두 조선업과 해운업의 경험이 없다는 게 공통적인 약점"이라며 "최근 대우조선 인수전 참여 의사를 밝힌 STX그룹은 이런 점을 감안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