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에게 듣는다] 美메릴린치 한국인 PB 피터 황…맨해튼서 '톱 브랜드 PB'로 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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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금융의 상징인 미국 뉴욕 맨해튼.JP모건 씨티 UBS 도이치뱅크 피델리티 등 세계적인 투자은행(IB)과 자산운용사들이 즐비한 마천루 사이로 메릴린치 PB본부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약속한 오후 4시보다 5분 일찍 24층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는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자리를 권하더니 모니터를 지켜보면서 계속 주문을 내고 거래를 체결했다.
"이제 끝났네요. 오후 4시 뉴욕 증시가 마감할 때까지는 한 눈을 팔기 어렵거든요. "
최근 맨해튼 사무실에서 만난 피터 황(본명 황웅성)은 '워커홀릭'이었다. 그는 한국인으로는 드물게 PB들의 무덤이라는 맨해튼,그중에서도 PB 분야에서 만큼은 강자의 지위를 유지하는 메릴린치의 PB본부에서도 수익률 1~2위를 기록하는 최고수다. 그가 굴리는 돈만 3억달러가 넘는다.
"안 좋은 직업입니다. 하루 24시간 시장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체력도 그렇고,정신적인 부담이 많습니다. 제게 1억달러를 맡긴 고객이 불과 한 달 만에 1000만달러를 날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저도 고통스럽죠.그렇다고 해서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시장의 움직임에 감정이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
경쟁의 강도는 살인적이라고 했다.
"어제는 2등 했습니다. 여기 본부에만 100명의 PB가 있습니다. 1등에서 밀렸죠.매일 랭킹이 나옵니다. 신규 자금 유치와 수익률 등을 종합평가합니다. "
그의 24시간은 말 그대로 전쟁이다. 계속되는 전화상담과 투자 권유,수익률 설명,시장 분석 등으로 물샐 틈이 없다.
"메릴린치가 FA를 뽑는 기준은 '이 사람이 얼마나 많은 자산을 끌어올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2년간의 수습 기간에 매달 목표한 액수를 채워야 합니다. 저의 경우 2400만달러였습니다. 못 맞추면 바로 해고입니다. "
미국,그것도 부자들이 가장 많이 밀집해 있다는 뉴욕에서 PB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메릴린치 타깃 고객의 평균 연령이 67세입니다. 저 같은 파이낸셜 어드바이저(FA)의 평균 나이는 46세입니다. 적어도 불혹(不惑)의 나이는 돼야 부자와 얘기가 통한다는 것입니다. FA는 회사의 직원이 아니라 내가 번 만큼 가져가는 독립 경영인입니다. 여기서 FA는 관리자로 자리를 옮기지 않고 끝까지 전문가로 남습니다. 한국에서는 삼성증권,미래에셋 같은 회사 이름이 중요하죠.물론 여기도 브랜드가 중요하지만 FA도 그에 못지 않습니다. "
실제로 메릴린치에는 30년 넘게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FA들이 즐비하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보다 영향력이 크다는 제이미 다이몬 JP모건체이스 회장의 아버지도 같은 층에서 근무하고 있다.
맨해튼에만 3만명 가까운 PB들이 생존 경쟁을 벌이는 와중에서 그가 버틸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 조건은 끊임없는 공부입니다. 시장은 말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동물입니다.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르죠.심지어 5분 전 생각과 지금도 다릅니다. "
상품 종류만 해도 주식,채권,헤지펀드,구조화채권,해외통화,선물옵션 등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 내 투자인지,해외 쪽인지,펀드의 경우 산업섹터는 어디이고 지역도 어디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한마디로 공부하지 않으면 고객에게 상품을 권할 수도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지난달 말부터 현물시장에서 사들인 원유를 모두 팔았다고 했다. 유가가 본격적으로 조정을 받기 전이다. 대략 배럴당 130달러 선이었다. "배럴당 150~200달러까지 간다는 예측도 있었죠.그런데 80달러로 떨어질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팔아서 이익을 챙길 때라고 판단했죠.이미 벌어 놓은 것을 언제 팔 것인지 정확한 타이밍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
그의 사무실은 생각보다 좁고 소박했다. 각종 차트와 시세표가 번갈아 뜨는 LCD 모니터 2대와 전화기,각종 자료와 책자,리포트로 사무실은 가득 차 있었다. 화려한 응접실의 편안한 가죽소파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뉴욕의 백만장자들과 자산 상담을 하기에는 실무적인 공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1년에 얼굴 한 번 못보고 지나치는 고객들이 대다수입니다. 얼굴도 모르고 전화통화만으로 상담하는 고객도 꽤 있죠.본래 PB는 고객에게 최고의 수익률을 제공하는 게 목표입니다. 부동산과 세무 상담을 해주고,자녀들 유학까지 알선해주는 게 본업은 아니죠."
뉴욕=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
▶ 피터 황은 누구
피터 황은 삼성증권 뉴욕법인장 출신으로 외환위기 당시 그룹 비서실에서 구조조정 업무에 관여한 재무통이다. 부친이 삼성생명 사장과 삼성카드 부회장을 지낸 황학수씨다.
1987년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삼성물산과 삼성증권에서 기업금융 업무를 주로 맡았고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MBA(경영학 석사)를 땄다. 외환위기 당시 삼성증권으로 옮겨 국내 자산의 해외 매각과 관계사 구조조정 작업에 뛰어들었다. 삼성증권 벤처투자와 해외 자금 유치 및 CRC(기업 구조조정회사) 설립 작업 등에 관여하다 2001년 뉴욕법인장으로 부임했다. 한마디로 잘 나가던 삼성맨에서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 월스트리트에서 일해보고 싶어 이직을 결심하고 제 발로 메릴린치를 찾았다.
약속한 오후 4시보다 5분 일찍 24층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는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자리를 권하더니 모니터를 지켜보면서 계속 주문을 내고 거래를 체결했다.
"이제 끝났네요. 오후 4시 뉴욕 증시가 마감할 때까지는 한 눈을 팔기 어렵거든요. "
최근 맨해튼 사무실에서 만난 피터 황(본명 황웅성)은 '워커홀릭'이었다. 그는 한국인으로는 드물게 PB들의 무덤이라는 맨해튼,그중에서도 PB 분야에서 만큼은 강자의 지위를 유지하는 메릴린치의 PB본부에서도 수익률 1~2위를 기록하는 최고수다. 그가 굴리는 돈만 3억달러가 넘는다.
"안 좋은 직업입니다. 하루 24시간 시장을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체력도 그렇고,정신적인 부담이 많습니다. 제게 1억달러를 맡긴 고객이 불과 한 달 만에 1000만달러를 날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저도 고통스럽죠.그렇다고 해서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시장의 움직임에 감정이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
경쟁의 강도는 살인적이라고 했다.
"어제는 2등 했습니다. 여기 본부에만 100명의 PB가 있습니다. 1등에서 밀렸죠.매일 랭킹이 나옵니다. 신규 자금 유치와 수익률 등을 종합평가합니다. "
그의 24시간은 말 그대로 전쟁이다. 계속되는 전화상담과 투자 권유,수익률 설명,시장 분석 등으로 물샐 틈이 없다.
"메릴린치가 FA를 뽑는 기준은 '이 사람이 얼마나 많은 자산을 끌어올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2년간의 수습 기간에 매달 목표한 액수를 채워야 합니다. 저의 경우 2400만달러였습니다. 못 맞추면 바로 해고입니다. "
미국,그것도 부자들이 가장 많이 밀집해 있다는 뉴욕에서 PB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메릴린치 타깃 고객의 평균 연령이 67세입니다. 저 같은 파이낸셜 어드바이저(FA)의 평균 나이는 46세입니다. 적어도 불혹(不惑)의 나이는 돼야 부자와 얘기가 통한다는 것입니다. FA는 회사의 직원이 아니라 내가 번 만큼 가져가는 독립 경영인입니다. 여기서 FA는 관리자로 자리를 옮기지 않고 끝까지 전문가로 남습니다. 한국에서는 삼성증권,미래에셋 같은 회사 이름이 중요하죠.물론 여기도 브랜드가 중요하지만 FA도 그에 못지 않습니다. "
실제로 메릴린치에는 30년 넘게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FA들이 즐비하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보다 영향력이 크다는 제이미 다이몬 JP모건체이스 회장의 아버지도 같은 층에서 근무하고 있다.
맨해튼에만 3만명 가까운 PB들이 생존 경쟁을 벌이는 와중에서 그가 버틸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첫째 조건은 끊임없는 공부입니다. 시장은 말 그대로 살아 움직이는 동물입니다. 오늘이 다르고 내일이 다르죠.심지어 5분 전 생각과 지금도 다릅니다. "
상품 종류만 해도 주식,채권,헤지펀드,구조화채권,해외통화,선물옵션 등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 내 투자인지,해외 쪽인지,펀드의 경우 산업섹터는 어디이고 지역도 어디인지 따져봐야 한다는 것.한마디로 공부하지 않으면 고객에게 상품을 권할 수도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지난달 말부터 현물시장에서 사들인 원유를 모두 팔았다고 했다. 유가가 본격적으로 조정을 받기 전이다. 대략 배럴당 130달러 선이었다. "배럴당 150~200달러까지 간다는 예측도 있었죠.그런데 80달러로 떨어질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팔아서 이익을 챙길 때라고 판단했죠.이미 벌어 놓은 것을 언제 팔 것인지 정확한 타이밍을 잡는 것이 중요합니다. "
그의 사무실은 생각보다 좁고 소박했다. 각종 차트와 시세표가 번갈아 뜨는 LCD 모니터 2대와 전화기,각종 자료와 책자,리포트로 사무실은 가득 차 있었다. 화려한 응접실의 편안한 가죽소파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뉴욕의 백만장자들과 자산 상담을 하기에는 실무적인 공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1년에 얼굴 한 번 못보고 지나치는 고객들이 대다수입니다. 얼굴도 모르고 전화통화만으로 상담하는 고객도 꽤 있죠.본래 PB는 고객에게 최고의 수익률을 제공하는 게 목표입니다. 부동산과 세무 상담을 해주고,자녀들 유학까지 알선해주는 게 본업은 아니죠."
뉴욕=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
▶ 피터 황은 누구
피터 황은 삼성증권 뉴욕법인장 출신으로 외환위기 당시 그룹 비서실에서 구조조정 업무에 관여한 재무통이다. 부친이 삼성생명 사장과 삼성카드 부회장을 지낸 황학수씨다.
1987년 삼성그룹 공채로 입사,삼성물산과 삼성증권에서 기업금융 업무를 주로 맡았고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MBA(경영학 석사)를 땄다. 외환위기 당시 삼성증권으로 옮겨 국내 자산의 해외 매각과 관계사 구조조정 작업에 뛰어들었다. 삼성증권 벤처투자와 해외 자금 유치 및 CRC(기업 구조조정회사) 설립 작업 등에 관여하다 2001년 뉴욕법인장으로 부임했다. 한마디로 잘 나가던 삼성맨에서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 월스트리트에서 일해보고 싶어 이직을 결심하고 제 발로 메릴린치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