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노사 현장을 가다] (上) 법과 원칙의 나라들 "이라크 파병이 노동자와 무슨 상관?"…정치파업 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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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파병이 노동자의 근로조건과 무슨 관련이 있나요. 노조의 권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는 나서지 않습니다. 스페인 정부가 이라크에 군대를 파병했을 때에도 반대의사만 표시했을 뿐 파업은 벌이지 않았습니다. "
마드리드 시내에 위치한 스페인노총(UGT)사무실에서 만난 요세파 소라 페레즈 단체교섭국장은 "이라크 파병에 많은 국민들이 반대의견을 피력해 굳이 노동계까지 나설 필요가 없는 것 같아 개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스페인에서는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무슬림들이 2004년 봄 마드리드역에 폭탄테러를 가해 190여명이 사망하는 불상사가 발생했지만 노동계는 정부의 이라크 파병을 문제삼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다간 정치적 이슈에 노동계가 관여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사대립이 심한 라틴모델로 분류되는 스페인 노동계이지만 노동단체들은 주로 노동자의 권익보호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화물차주들이 올해 고유가에 따른 손실을 보조해 달라며 정부를 상대로 파업을 벌였을 때에도 노동단체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페레즈 국장은 "화물차주들은 자기 책임하에 사업을 영위하는 사업주이지 노동자가 아니다"며 "노동단체가 그런 데까지 관여할 여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노동단체가 정치파업을 외면하는 것은 노동운동의 발상지인 영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영국노총(TUC)의 폴 노왝 조직부장은 "우리는 노사협상을 돕는 일은 하지만 파업을 부추기는 행동은 전혀 하지 않는다"며 "상급 노동단체가 총파업을 지시한 경우는 1926년 총파업 이후 82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소개했다. 이라크 파병 때도 영국노총 지도부의 일치된 견해가 없었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조차도 발표하지 않았다.
영국의 노사현장은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총리가 노조 무력화정책을 쓴 이후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노조가 불법파업을 벌이는 경우는 거의 없고 법을 어겼다가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히 처벌받는다. 노조가 불법파업을 벌이면 사용자는 즉각 해고를 할 수 있고 아무리 합법파업이라도 3개월을 넘길 경우 사용자는 즉시 해고할 수 있다.
영국항공에 기내 음식물을 공급하던 고오멧 게이트사의 노조원 500여명이 2005년 여름 파업을 벌였을 때 회사 측의 대응방식을 보면 영국 노사관계의 힘이 균형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는지를 금방 짐작할 수 있다. 회사 측은 파업노조원들에게 즉각 복귀명령을 내렸고 이를 어긴 노조원 350여명을 즉시 해고했다. 일부 노동단체에서만 회사 측의 행위를 비난했을 뿐 언론들은 사실을 보도하는 데 그쳤다. 영국에서는 노동운동을 하다 법과 원칙을 어길 경우 아무리 가혹한 처벌을 받더라도 국민적 지지를 받기 어렵다. 고오멧 해고자들은 회사 측의 조치에 반발, 법원에 구제를 신청했지만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은 채 3년째 재판이 진행 중이다.
영국 경총(CBI)의 닐 카베리 고용정책국장은 "영국에서는 잘못 파업을 벌였다가는 곧바로 해고되기 때문에 뚜렷한 명분이나 정당성이 없는 파업은 거의 자취를 감춘 상태"라며 "정치파업은 아예 생각지도 못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사회적 대타협을 일군 아일랜드에서는 노조가 정치적 파업은 생각지도 않는다. 3년마다 한 번씩 도출하는 아일랜드노총(ICTU)과 경총(IEBC) 간 단일 임금 인상안은 노사관계선진화를 한 단계 격상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법과 원칙을 요구하는 다국적 기업이 많이 진출해 있는 아일랜드의 경제상황을 감안하면 노동계가 정치파업이나 불법파업을 벌일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직시하고 있다. 아일랜드는 연간파업이 10건을 조금 넘고 있으며 이로 인한 파업손실일수는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
런던ㆍ마드리드ㆍ더블린=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
마드리드 시내에 위치한 스페인노총(UGT)사무실에서 만난 요세파 소라 페레즈 단체교섭국장은 "이라크 파병에 많은 국민들이 반대의견을 피력해 굳이 노동계까지 나설 필요가 없는 것 같아 개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스페인에서는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무슬림들이 2004년 봄 마드리드역에 폭탄테러를 가해 190여명이 사망하는 불상사가 발생했지만 노동계는 정부의 이라크 파병을 문제삼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다간 정치적 이슈에 노동계가 관여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노사대립이 심한 라틴모델로 분류되는 스페인 노동계이지만 노동단체들은 주로 노동자의 권익보호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화물차주들이 올해 고유가에 따른 손실을 보조해 달라며 정부를 상대로 파업을 벌였을 때에도 노동단체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페레즈 국장은 "화물차주들은 자기 책임하에 사업을 영위하는 사업주이지 노동자가 아니다"며 "노동단체가 그런 데까지 관여할 여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노동단체가 정치파업을 외면하는 것은 노동운동의 발상지인 영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영국노총(TUC)의 폴 노왝 조직부장은 "우리는 노사협상을 돕는 일은 하지만 파업을 부추기는 행동은 전혀 하지 않는다"며 "상급 노동단체가 총파업을 지시한 경우는 1926년 총파업 이후 82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소개했다. 이라크 파병 때도 영국노총 지도부의 일치된 견해가 없었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조차도 발표하지 않았다.
영국의 노사현장은 1980년대 마거릿 대처 총리가 노조 무력화정책을 쓴 이후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노조가 불법파업을 벌이는 경우는 거의 없고 법을 어겼다가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히 처벌받는다. 노조가 불법파업을 벌이면 사용자는 즉각 해고를 할 수 있고 아무리 합법파업이라도 3개월을 넘길 경우 사용자는 즉시 해고할 수 있다.
영국항공에 기내 음식물을 공급하던 고오멧 게이트사의 노조원 500여명이 2005년 여름 파업을 벌였을 때 회사 측의 대응방식을 보면 영국 노사관계의 힘이 균형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는지를 금방 짐작할 수 있다. 회사 측은 파업노조원들에게 즉각 복귀명령을 내렸고 이를 어긴 노조원 350여명을 즉시 해고했다. 일부 노동단체에서만 회사 측의 행위를 비난했을 뿐 언론들은 사실을 보도하는 데 그쳤다. 영국에서는 노동운동을 하다 법과 원칙을 어길 경우 아무리 가혹한 처벌을 받더라도 국민적 지지를 받기 어렵다. 고오멧 해고자들은 회사 측의 조치에 반발, 법원에 구제를 신청했지만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은 채 3년째 재판이 진행 중이다.
영국 경총(CBI)의 닐 카베리 고용정책국장은 "영국에서는 잘못 파업을 벌였다가는 곧바로 해고되기 때문에 뚜렷한 명분이나 정당성이 없는 파업은 거의 자취를 감춘 상태"라며 "정치파업은 아예 생각지도 못하는 일"이라고 밝혔다.
사회적 대타협을 일군 아일랜드에서는 노조가 정치적 파업은 생각지도 않는다. 3년마다 한 번씩 도출하는 아일랜드노총(ICTU)과 경총(IEBC) 간 단일 임금 인상안은 노사관계선진화를 한 단계 격상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법과 원칙을 요구하는 다국적 기업이 많이 진출해 있는 아일랜드의 경제상황을 감안하면 노동계가 정치파업이나 불법파업을 벌일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직시하고 있다. 아일랜드는 연간파업이 10건을 조금 넘고 있으며 이로 인한 파업손실일수는 거의 발생하지 않고 있다.
런던ㆍ마드리드ㆍ더블린=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