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18일.에이즈 치료제 세계시장 점유율 1위인 미국 길리아드(Gilead Science)의 김정은 부사장이 한국화학연구원을 방문했다. 김 부사장은 조류인플루엔자(AI) 치료약인 '타미플루'를 개발한 인물.그는 화학연구원이 연구 중인 에이즈 치료제 화합물의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이날 연구원 측과 '에이즈치료제 후보물질'을 개발하기 위한 공동연구 협약을 맺었다. 이로부터 2년 후인 지난 6월.화학연구원 손종찬 박사팀은 에이즈를 일으키는 바이러스(HIV-1)의 증식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역전사 효소의 활성을 억제하는 '비핵산 계열 역전사 효소 저해제(NNRTI)'라는 에이즈 치료제 후보물질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기술이전으로 고수익 창출

기술이전이란 '연구소나 대학·기업 등이 특정 기술을 개발한 뒤 이를 제품화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기업 등 수요자에게 계약이나 협상 등의 과정을 통해 판매하는 행위'를 말한다.

화학연구원은 에이즈 치료제 후보물질을 길리아드에 넘겨주고 기술이전료로 85억원을 받았다. 향후 이 기술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임상시험을 거쳐 상용화될 경우 화학연구원은 2028년까지 매년 300억원 상당의 기술료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술이전,즉 기술거래가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전에도 개발된 기술을 팔아 수익을 창출한 경우는 적지 않았다. 지난해 6월 한국기계연구원은 'DPF 재생용 플라즈마 버너 기술'을 기술료 105억원을 받고 HK-MnS㈜와 ㈜템스에 넘겼다. 같은 해 11월 화학연구원은 ㈜카이노스메드에 '당뇨병 치료제 후보물질 DPP-IV 저해제'를 이전하면서 95억원을 챙겼다.

올초에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KRISS)이 모바일 기기에 이용할 수 있는 촉각센서를 활용한 '초소형 마우스 및 터치스크린 기술'을 ㈜미성포리테크에 이전,325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이는 1990년대 초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CDMA 기술을 개발,미국 퀼컴사로부터 수천억원대의 로열티를 벌어들인 이후 공공연구기관의 기술이전 성사 사례 중 단일 건으로는 최대 규모로 꼽힌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도 실리콘 태양전지 제조비용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염료 감응형 태양전지 셀 제조기술'을 개발,이달 15일 동진쎄미켐에 28억원에 기술을 이전하는 등 고수익을 창출하는 기술거래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기술거래소에서 조사한 공공연구기관의 기술이전 현황에 따르면 공공연구기관의 누적 보유기술 수는 2007년 5만5758건으로 2006년보다 32.6% 늘어났다. 같은 기간 기술이전 건수도 3477건으로 전년 대비 67.7% 증가했다. 기술이전에 대한 대가로 받는 기술료도 증가 추세다. 2004년 565억원 수준이던 기술료 규모는 지난해 처음으로 1000억원을 돌파한 1044억1300만원을 기록,3년 만에 2배 가까운 증가율을 보였다.

◆기술개발 못지않게 기술거래가 중요

막대한 개발비가 투입된 기술로 '대박'을 터뜨리려면 '기술거래'가 필수적이다. 기술개발 못지않게 기술이전이 돈이 되는 시대인 셈이다. 이에 비해 정부 R&D 지원사업은 그동안 막대한 연구비를 투입해 기술을 개발해 놓고도 수익 창출로 연결하지 못해 '고비용.저효율' 구조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는 기술거래 활성화를 위해 2006년부터 전국 28곳의 공공연구소 및 대학에 기술거래 마케팅을 전담하는 '선도기술이전전담조직(TLO.Technology Licensing Office)'을 구성,매년 80억원 안팎의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해당 기술을 개발한 연구기관이나 대학에서 직접 마케팅에 나설 경우 훨씬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국기술거래소 관계자는 "TLO는 한국기술거래소와 함께 기술개발 성과를 효과적으로 포장.판매하는 마케팅.홍보 역할을 맡고 있다"며 "최근 기술거래 성과도 대부분 TLO에서 거둔 사례"라고 전했다. 예컨대 지난 3월 '초소형 마우스 및 터치스크린 기술'을 이전한 KRISS의 경우 전담 TLO(지적자원경영팀) 팀장이 기술이전 성과 극대화 등의 공로를 인정받아 '이달의 KRISS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 관계자는 또 "선진 외국의 기술이전 전담조직 인력은 8~10명 수준으로 우리보다 많다"며 "기술이전 성과를 보다 늘려나가기 위해서는 기술거래 인프라 확충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