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7시간 27초,26초,25초….베이징올림픽 개막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28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 동쪽 국가박물관 앞.높이 40m 빌딩 외벽을 가득 채운 거대한 올림픽시계탑은 쉼 없이 개막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시계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는 청년에게 올림픽이 어떤 의미를 갖느냐고 물었다. 그의 답은 "중궈후이라이러(中國回來了)!" 중국이 다시 돌아왔다는 뜻이다.

서구열강의 총칼 앞에 무릎을 꿇고,고된 혁명과 고통스러운 가난을 이겨낸 중국이 올림픽을 통해 다시 세계의 중심이 됐다는 말이다. 톈안먼을 둘러싸고 있는 마오쩌둥 기념관이나 자금성이 아니고,중국 권력의 상징인 인민대회당도 아닌 국가박물관 앞에 올림픽 시계탑이 서 있는 이유를 알 만했다.

국가박물관 안에 소장된 유물에는 한때 세계 GDP(국내총생산)의 40%를 차지했으며,중국인을 제외한 모든 민족을 오랑캐로 부르던 '강성대국 중국'이 숨쉬고 있다. 중국은 지금 올림픽을 통해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을 다시 시현,베이징(北京)을 '시징(世京ㆍ세계의 수도)'으로 만들겠다는 의지에 불타고 있다.

'중화의 부활'.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지난 2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이같이 선언했다. 중화부활의 출발점은 10일 앞으로 다가온 베이징올림픽이다.

중국이 지향하는 부활의 목표점은 '한ㆍ당(漢ㆍ唐) 시대'다. 한ㆍ당 시대는 '강한 한나라와 번성한 당나라'를 상징하는 말이다. 작년 말 국영 CCTV에서 올림픽 개최를 기념해 발표한 노래의 제목은 '다시 한ㆍ당으로 돌아가자(重回漢唐)'였다.

"한ㆍ당으로 돌아가,다시 중화의 문화가 넘치는 태평성대를 읊고 싶다"는 내용이다. 강대국의 흥망성쇠를 담은 '대국굴기',중국의 역사와 강대국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를 역설한 TV 프로그램 '부흥의 길'에 중국인들은 열광했다.

아직 베일에 싸인 개막식 행사도 화려했던 중국의 과거와 세계의 부국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담고 있다고 한다. 올림픽 주경기장인 냐오차오(새둥지라는 뜻)가 지어진 곳은 영국과 프랑스의 공격으로 불타버린 옛 청나라 황제의 여름 별장 터다.

세계 최대의 철골 구조물인 냐오차오 건설에 쓴 철제는 모두 중국산이다. 서구열강으로부터 당한 수모를 중국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겠다는 의지가 배어난다.

중화의 부활 선언은 올림픽 개최로만 끝나는 게 아니다. 오는 10월에는 세 번째 유인우주선이 발사된다. 특히 우주공간에서 유영(遊泳)하는 모습이 중계될 예정이다.

연말에는 중국을 초강대국 대열에 들게 한 개혁ㆍ개방 30년 기념행사를 대대적으로 개최한다. 택시 운전사 왕밍씨는 "올림픽을 연다는 것은 미국처럼 강한 나라가 됐다는 것 아니겠느냐"며 "경찰이 시내에 많이 깔려 불편하지만 올림픽이 열린다는 게 기쁘다"고 말했다.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중국에 강하게 몰아닥친 민족주의 바람은 따지고 보면 이런 열망이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환경이나 식품안전 그리고 인권탄압에 대한 문제 제기는 중국으로선 세계의 중심국가가 될 수 없다는 비판과 다름없다. "한ㆍ당의 재현을 열망하는 중국인들에게는 모욕적인 일"(상하이 국제문제연구소 린웡커 소장)이다.

그러나 중국이 한ㆍ당의 부활을 얘기할 수 있을 만큼 내부적으로 성숙했다고 말하긴 아직 어렵다. 베이징의 빈민들을 올림픽 기간 동안 시 외곽으로 내몰고,공기오염 때문에 차량 홀짝운행제를 실시하는 것도 모자라 베이징 인근 공장의 가동을 중단시키는 강압적 통제가 여전하다.

길에서 옷을 벗고 다니지 말자는 에티켓 운동을 펴야 할 만큼 시민의식도 낮다. 문(文)자와 인(人)자를 위아래로 연결해 달리는 사람을 형상화한 베이징올림픽 엠블럼이 의미하는 '문명과 사람의 합일'과는 아직 거리가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올림픽을 통해 중국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말라붙었던 베이징의 하천에는 물이 흐르고,하늘은 예전보다 훨씬 맑아졌다. 먼지만 날리던 도로 주변에는 갖가지 꽃과 잔디가 심어졌다. 올림픽은 중국인들에게 발전하는 중국에 대한 자부심과 중화의 부활에 대한 희망을 심어준 것이 분명하다.

그 자부심과 희망은 중국에 중화의 부활이라는 강력한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웃 나라들로선 이 같은 중화주의 부활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베이징=조주현 특파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