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인감증명서를 타인에게 발급해 대출이 이뤄졌다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2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H은행이 서울 구로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8일 밝혔다.

구로구의 한 동사무소 공무원은 2004년 6월 김모씨를 사칭하는 사람으로부터 인감증명서를 발급해달라는 신청을 받았다. 이 공무원은 신청서에 찍힌 지문과 컴퓨터 화면에 띄워진 김씨의 지문이 같다고 보고 인감증명서를 발급했다.

김씨의 인감증명서를 건네받은 오모씨는 며칠 후 김씨의 주민등록증에 자신의 사진을 붙이고 인감도장을 위조한 뒤 H은행 대출담당 직원에게 제출해 김씨의 아파트를 담보로 3억원을 대출받았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김씨는 은행 측에 항의했고 은행은 근저당권 설정등기를 말소해 준 뒤 구로구를 상대로 대출금 2억8000여만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과거에는 인감도장을 인감증명용지에 찍어 신고돼 있는 도장과 같은지 공무원이 판단해 증명서를 발급했지만 2003년 3월부터는 인감도장 없이 신분증 등으로 본인 또는 대리인 확인만 되면 증명서를 발급하고 있다.

대법원은 "현행 제도에서도 인감증명을 발급할 때 신청인이 본인 또는 대리인인지 확인해야 하고 발급대장에 서명날인이나 손도장을 받는 등 과거와 본질적인 변화가 없다"며 "공무원이 주의의무를 소홀히 해 인감증명을 발급,대출이 이뤄졌다면 인과관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며 판결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