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양택 < 한양대 경제금융대학장 >

얼마 전 금융위원회가 산업은행의 민영화 방안을 발표함으로써 그 추진일정에 속도가 붙고 있다. 이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올해 말 금융지주회사로 전환돼 2012년까지 순차적으로 민영화를 완료하게 된다. 2007년 12월31일 기준 자산규모 122조6000억원의 산업은행이 금융지주회사로 전환됨과 동시에 시중은행처럼 일반 고객들을 상대로 예금을 받고 대출을 해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또 중소기업과 대북경협을 위한 금융지원은 올해 말에 신설되는 정책금융기관인 한국개발펀드(KDF)가 맡을 것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해 시급한 것은 정체성 위기에 빠져 있는 산업은행의 역할을 재정립해 오는 8월 말까지 국회에 제출할 산은법 개정안을 제대로 만드는 것이다. 대내외 여건이 반영된 산업은행의 역할 방향과 강도에 따라 민영화 방안도 다소 달라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산업은행을 금융지주회사로 민영화하되 금융국제화를 겨냥한 글로벌 투자은행(IB)으로서의 활동은 최근의 국제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을 감안해 신중히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칫 국제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을 오히려 대외진출의 호기로 오판한 나머지,동북아 및 아시아 기타 지역으로 개발금융을 확대할 경우 큰 낭패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대신에 산업은행이 합작투자를 추진함으로써 외국인직접투자를 국내로 유도 및 촉진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특히 한ㆍ미,한ㆍ일,한ㆍ중,한ㆍ러 간 산업기술 협력을 위한 '전략적 제휴' 및 '자원외교'의 추진을 뒷받침해야 한다.

둘째,KDF의 투자금융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금융관행이 우선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은행법 제1조에 명시돼 있듯이,산업은행의 고유 업무는 우리 경제의 성장동력을 위한 유망산업의 발굴과 중소기업의 기술혁신을 적극 지원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술개발지원 금융제도를 현재의 '보증' 시스템에서 '투자' 시스템으로,산업기술지원 금융제도를 통폐합해 '담보위주'에서 '신용위주'로 각각 전환해야 한다. 그리고 자금의 가용성 제고를 위해 직ㆍ간접 기술금융 지원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투자금융'이란 돈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예대마진'이 아니라,사업성을 담보로 리스크를 안고 투자해 수익을 추구하는 제도다. 국내 부동산개발 사업에 진출해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 모건스탠리나 맥쿼리 은행 등의 실제 운영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셋째,민간금융기관들의 기술개발자금 지원 활성화를 위해 기술성 평가와 기술력 평가 등 기술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 은행의 고유 업무는 성장가능성이 높은 기업들에 대한 자금중개 기능이다. 그러나 국내은행들은 미래의 성장가능성보다는 담보위주의 여신관행에 익숙해 기술혁신형 기업에 대한 대출이 매우 저조하다. 그 이유는 기업들이 갖고 있는 기술성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은행들이 적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신용평가모형은 기술성을 평가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 아니라 신용위험을 추정하기 위한 것이다. 그 결과,은행은 기술이 갖는 중요성을 간과해 기술력이 높은 기업에 대한 신용대출이 어렵게 돼 있다. 이런 것이 국내 기술혁신형 기업들의 자금지원을 주로 정책금융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기술은 기업의 미래가치를 결정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기술금융제도의 정착을 위해서는 신뢰성 있는 기술평가시스템을 구축해 '기술에 대한 신용등급'을 금융시장에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술성 및 기술력 평가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과 기술가치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기술력을 평가하는 전문인력의 확충과 전문기관의 확보 등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