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M&A 10년만에 최고 … 값싸진 알짜매물 잇단 사냥
탄탄한 재무구조를 가진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약한 경쟁업체 사냥에 나서면서 세계 인수ㆍ합병(M&A) 시장에서 적대적 M&A가 차지하는 비중이 근 1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8일 보도했다. 적대적 M&A란 인수 대상 기업 이사회의 동의나 요청 없이 일방적으로 매수를 추진하는 경우를 뜻한다.

시장조사업체인 딜로직에 따르면 올 들어 현재까지 발표된 M&A 가운데 적대적 M&A 비중은 19%에 달했다. 이는 1999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1999년 24%에 달했던 적대적 M&A 비중은 2002년 5% 아래까지 떨어졌다가 2005년부터 다시 증가하는 추세다. 올 상반기 글로벌 M&A 시장 규모는 사모펀드들의 매수차입(바이아웃)이 위축되면서 작년 같은 기간보다 3분의 1가량 줄어든 1조8600억달러에 그쳤다.

최근의 적대적 M&A 사례로는 벨기에 맥주업체인 인베브가 '버드와이저'로 유명한 미국 맥주업체 안호이저-부시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인베브의 안호이저-부시 인수대금은 520억달러에 이른다. 또 독일의 자동차 베어링업체인 셰플러는 같은 독일의 자동차부품 대기업인 컨티넨탈을 인수하겠다고 나섰으며,영국의 세계적 광고기업인 WPP그룹은 영국 시장조사업체 TNS에 대한 적대적 M&A를 시도 중이다. 전통적으로 외국 기업 인수에 보수적이던 중국 기업들도 적대적 M&A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중국 철강업체인 시노스틸은 이달 초 철광석 등을 생산하는 호주 광산기업 미드웨스트를 10억달러에 인수했다. 중국 회사가 해외에서 적대적 M&A에 성공한 첫 사례다.

이처럼 적대적 M&A가 증가하는 것은 자금력이 탄탄한 기업들이 향후 경기가 회복됐을 때를 대비해 전략적 투자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자금조달에 문제가 없다면 신용경색 등으로 기업들의 주가가 떨어져 있는 지금이 저평가된 '알짜 매물'을 골라 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반면 타깃이 된 피인수 기업들은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다.

레이먼드 맥과이어 씨티그룹 글로벌 투자은행 부문 공동책임자는 "많은 기업의 경영자들과 이사진이 전략적인 판단의 결과 현재 시장 상황을 적극적인 기업 사냥의 호기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도이체방크의 헨릭 아슬락센 글로벌 M&A 공동책임자는 "믿을 만한 백기사가 없고 빠른 성과를 원하는 주주행동주의자들의 압박이 커지는 점도 적대적 M&A가 늘어나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FT는 또 피인수 기업의 이사진들이 주주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면서 적대적 M&A의 상당수가 우호적인 협상으로 마무리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올해 적대적 M&A 중 실패 비율은 31%로,1997년 이후의 평균치인 42%보다 훨씬 낮아졌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