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3년전 이맘 때 뉴욕에 부임했다. 월셋집(렌트)을 찾았지만 여의치 않았다. 난감해 하는 기자에게 부동산 중개인은 "집을 사라"고 권했다. "집값의 100%를,그것도 처음 3년은 아주 싼 금리로 빌려주는 모기지(주택담보대출) 회사가 널려 있으니 집을 샀다가 3년 후 귀국할 때 팔면 상당한 이득을 볼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3년이 지난 지금 그때를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 '만일 중개인의 유혹에 넘어갔다면 지금 어땠을까'하는 생각에서다.

뉴욕 생활 3년은 주택경기와 관련된 기사의 연속이었다. 처음 1년은 주택경기 활황이 주제였다. 그후 2년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파문에 파묻히다시피 했다. 사실 서브프라임 파문이 처음 터졌던 작년 3월만 해도 파장이 이처럼 커질 줄 아무도 몰랐다. '서브프라임 잔액은 3000억달러에 불과해 별 것 아니다'라는 분석이 주류를 이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미 행정부는 한술 더 떴다. 작년 7월 헤지펀드 2군데가 청산된 후에도 이들은 "미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여건)은 튼튼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시장이 출렁거렸던 작년 9월 FRB는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그게 다였다. 총량만 손댈 뿐 "모기지 이용자를 위한 대책을 세우라"는 요구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지난 3월 베어스턴스 사태를 전후해 시장질서가 무너질 조짐을 보이자 태도가 돌변했다. FRB는 비은행 금융회사에 긴급 자금을 직접 공급하기 시작했다. 정부도 서브프라임과의 전쟁을 수행하는 전사처럼 행동했다. 베어스턴스를 반강제로 JP모건체이스에 떠 넘기더니만 국책 모기지회사인 패니매와 프레디맥에 대한 구제조치도 군사작전처럼 해치웠다.

다른 감독기관도 마찬가지다. 증권거래위원회(SEC)는 19개 금융회사에 대한 공매도를 금지하고,50여개 헤지펀드를 대상으로 불공정거래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와 통화감독청(OCC)은 물론 연방수사국(FBI) 등도 일사불란하게 나서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언제 규제완화와 작은 정부를 외쳤는지 모를 정도다.

미 감독당국의 이런 태도가 옳다는 건 물론 아니다. 국민의 혈세로 위기를 넘기려 한다거나,미 정부의 신용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거나,화근을 더 키워 엄청난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등의 비판에도 일리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정부가 강력한 대책을 밀어붙임에 따라 붕괴조짐을 보이던 시장이 안정을 되찾고 있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다. 여기서 느낀 점은 두 가지다. 정부는 가능한 한 시장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첫번째고,개입에 나서려면 확실한 의지를 갖고 뚝심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게 두 번째다.

귀국을 앞둔 지금 국내 소식을 들으면 우울하기 짝이 없다. 경제환경은 갈수록 악화되는데 강력한 의지를 갖고 난국을 타개해야 할 정부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시장개입과 불개입의 경계선을 넘나들면서 원칙도 뚝심도 없다보니 잃어버린 신뢰를 쉽게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외환위기 재연론'이 갈수록 설득력을 얻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