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기업 인수ㆍ합병(M&A) 시장 상황이 좋지 않고,경기 침체기에 중소기업 지원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금융공기업 매각 시점을 늦추기로 했다. 이유가 분명하다고 하지만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정책이 자칫 뿌리부터 흔들릴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28일 국회 공기업관련대책 특별위원회에 출석,기업은행의 민영화 시기를 신설되는 한국개발펀드(KDF)가 안정화돼 중기 정책금융체계가 안정된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고 밝혔다. 우리금융지주와 정부 소유 구조조정 기업들의 매각도 시장 상황을 고려해 매각대금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혀 매각 시기가 늦춰질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그동안 우리금융지주와 기업은행의 소수지분 매각을 올 하반기부터 추진하겠다고 밝혀왔다. 우리금융 지분의 경우 50%를 제외한 23%를 우선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정부가 수출입은행 산업은행과 함께 67%를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행은 소수지분을 2010년까지 매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방침이 바뀌었다. 기업은행은 KDF가 제대로 작동해 신보 기보 등 정책금융체계가 안정화된 뒤에 매각을 추진하고,우리금융 매각은 주가가 올라 매각대금 회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시점까지 늦추겠다는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하반기 경기가 나빠지면서 중소기업들이 어려워질 수 있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기업은행 민영화를 추진하면 정책금융 지원이 소홀해진다는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은행에 대해서는 당초 예정대로 올해 9~10월 법을 개정해 산은을 인적분할하는 과정을 거쳐 내년 초까지 산은 지주회사와 KDF를 설립할 계획이다.

금융위는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를 통해 공적자금이 투입됐거나 산은이 지분을 보유한 회사 중 경영권 매각 대상이 되는 기업들의 매각도 시장상황 등을 고려해 추진하기로 했다. 경영이 이미 정상화됐고 잠재인수자가 존재하는 경우 매각대금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대우조선해양 쌍용건설 대우일렉트로닉스 등 이미 매각 절차에 들어간 기업은 그대로 매각을 진행한다.

산은이 지분을 보유한 기업 가운데 현대건설 하이닉스 현대종합상사 쌍용양회 팬택 팬택앤큐리텔 한국항공우주 등은 KDF 출범 전까지 매각되지 않으면 KDF로 넘겨서 정부 주관 하에 매각을 추진키로 했다. 산은이 보유 중인 한국전력 도로공사 등 공기업 주식은 KDF로 이관하되 매각하지는 않는다.

금융위는 8월 중 신보와 기보의 통합 여부에 대한 공론화 과정 및 관계부처 협의 등을 거쳐 최종 방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 문제도 궁극적으론 중소기업 정책금융 수요를 감안해 시간을 두고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전광우 위원장은 "신보ㆍ기보 통합 여부와 기업은행의 민영화,KDF의 설립 등은 모두 중소기업 지원과 연계돼 있다"며 "당분간 현행 중소기업 지원체제를 과도하게 변경하지 않고 토론회 등을 거쳐 최종 방안을 결정하겠다"고 설명했다. 전 위원장은 "민영화 계획을 확정한 산업은행을 제외한 나머지는 검토 단계"라고 덧붙였다. 금융위는 또 예보와 자산관리공사의 경영 선진화 방안도 공론화 과정을 거쳐 입장을 정리하기로 했다.

정재형 기자 jjh@hankyung.com